(서울=연합인포맥스)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또 다른 위험 요인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는 국제유가가 문제다. 그간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유가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자발적인 감산 결정에 꿈틀하고 있어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의 감산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최고인 8% 급등하면서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고, 두바이유도 하루 만에 8% 정도 올라 배럴당 84.10달러까지 치솟았다. OPEC+ 발표 이후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이번 감산 소식은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OPEC+의 새로운 원칙과 궤를 같이한다"면서 올해 브렌트유 전망치를 기존 배럴당 90달러에서 95달러로 올렸다.

문제는 유가 상승이 국내외 금융시장 가격변수에 악영향을 미치는 데다 향후 물가와 무역수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등 실물 경제나 거시지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OPEC+의 감산 발표 직후였던 전일 국내 금융시장에서 코스피지수와 채권가격, 원화 가치가 일제히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OPEC+의 감산 조치에도 국제유가가 80달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유가가 경기둔화나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인식도 없지 않다. 그러나 유가가 불안이 지속될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그렇지 않아도 높은 글로벌 물가 수준을 다시 끌어올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 그나마 둔화하는 물가가 유가 급등을 계기로 재차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를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당초 시장의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방점을 뒀던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일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도 인플레이션의 고착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유가는 변동이 심해 따라잡기 어렵지만 일부가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연준의 일을 좀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유가 급등으로 연준의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금융시장 일부에서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달라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제조업 경기둔화 우려로 10년물 미국 국채금리가 전일보다 6.80bp 하락한 3.428%에 거래된 와중에도 1개월물 미 국채금리가 장중 4.60% 근처까지 상승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한국 경제는 유가 등 국제에너지 가격에 더욱 취약하다는 게 문제다.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원유 등 국제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국제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한국의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다른 통화에 비해 원화가 유독 약세를 연출하는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미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가 상승이 현실화하면 무역수지 적자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게 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3월 수출액은 551억3천만달러로, 지난해 3월보다 13.6% 감소했다.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연속으로 전년 대비 뒷걸음질이다. 이에 따라 3월 무역수지도 46억2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3월부터 13개월 연속 적자행진이다. 올해 3개월 동안 무역수지 적자만 224억달러에 달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계속된 무역수지 적자는 대내외적으로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도체 등 일부 제조업황 부진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커진 가운데 유가마저 상승할 경우 한국의 실물경제나 금융시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달러-원 환율을 추가로 끌어올림으로써 물가는 물론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의구심을 키울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 자체 관리는 어렵지만 경제 전반에는 파장을 미칠 리스크가 가세한 셈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나 크레디트스위스(CS)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권 위기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됐다면, 유가 리스크는 한국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주목해야 할 변수인 셈이다. (취재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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