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 훈풍 포착, 타이밍 적중…경쟁력 입증, 벤치마크 역할 부각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크레디스스위스(CS) 사태 등으로 주춤했던 유로화 채권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다.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도 역내외 발행물이 쏟아지는 등 최근 활황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에서 유로화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투자자 성향이 보수적인 탓에 국책은행 등 우량 기업만이 간간이 문을 두드려왔다. 최근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이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발행을 이어가곤 있지만 유로화 선순위채는 공모 한국물 시장에서 지난해 9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분위기를 바꾼 건 KDB산업은행이다. KDB산업은행은 한국 발행물이 없어 적정 금리 수준조차 파악하기 어렵던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벤치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KP 유로화 선순위채 포문, 투자자 신뢰 굳건

1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은 오는 23일(납입일 기준) 7억5000만 유로(약 1조842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다. 트랜치(tranche)는 5년 고정금리부채권(FXD)이다.

한국물 공모 시장에 유로화 선순위채가 등장한 건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유로화 시장을 겨냥하기란 쉽지 않았다. 'AAA' 등급을 자랑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조차 녹록지 않은 투자 심리 탓에 쉽사리 시장을 찾을 수 없었다.

크레디트스위스(CS) 코코본드(AT1) 상각 사태로 시장은 더욱 출렁였다. 유럽 또한 금리 인상 기조로 전환하자 역외물의 가산금리(스프레드) 메리트가 한풀 꺾인 점도 부담을 높였다.

KDB산업은행은 시장을 주시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 틈을 포착했다. 점차 CS 사태 등의 불안감이 완화하고 역내외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유로화 조달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다.

직접 투자자를 찾아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대면 넌딜로드쇼(NDR)을 진행해 다양한 유로화 투자 기관과 접점을 만든 것이다. SVB 사태를 이끈 유가증권 투자와 국내 시장 불안을 높이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완화하는 등 기관 설득에 집중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시장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이달 들어 역내외 기관들의 유로화 채권 발행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특히 지난 18일 북유럽권의 승천대축일 휴일을 앞두고 이번 주 유로화 채권 발행과 기관들의 자금 집행이 활발해졌다.

KDB산업은행도 이를 겨냥해 지난 16일 북빌딩(수요예측)에 나섰다. 최초제시금리(IPG, 이니셜 가이던스)는 '유로화 미드 스와프(EUR MS)+high 40bp'로 제시해 40bp 후반대에서 자유롭게 주문을 넣을 수 있게 했다. 한동안 KP 발행물이 없었던 터라 적정 금리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IPG 범위를 비교적 폭넓게 설정한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북빌딩을 통해 51개 기관으로부터 총 11억6천만 유로의 수요를 확보했다. 유로화 채권의 경우 실수요 중심으로 주문을 넣는다는 점에서 발행액 수준의 물량을 모으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KDB산업은행은 발행액의 1.5배에 달하는 수요를 확보했다.

풍부한 수요에 힘입어 스프레드는 유로화 미드 스와프보다 43bp 높은 수준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른 쿠폰 금리와 수익률(yield)은 각각 3.375%, 3.428%다.

◇우량 기관 대거 포섭…상징성·실리 다 잡았다

이번 조달로 KDB산업은행은 시장 벤치마크 역할은 물론 금리 측면의 실리 또한 톡톡히 챙겼다. 달러화 조달보다 낮은 금리를 달성해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린 것이다.

KDB산업은행의 관찰력과 과감한 결단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유로화 채권의 경우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발행물이 흔치 않았던 터라 가격 측면에서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물 발행사들은 달러채와의 금리 경쟁력을 비교하면서 더욱 유로화 채권 조달에 나설 수 없었다.

KDB산업은행은 달랐다. 달러화 다음으로 큰 시장으로 꼽히는 유로화 시장을 놓지 않고 분위기를 살피는 것은 물론, 한계를 보완할 수 있도록 만기 구조 측면에서도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기존 유로화 채권 유통물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새로운 만기물 대신 지난해 9월 발행한 채권과 동일한 5년물을 택했다.

KDB산업은행의 도전으로 한국물 유로화 선순위채 조달의 금리 기준점이 재설정됐다. 시장 벤치마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뒤를 이어 한국수출입은행이 유로화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조달로 KDB산업은행은 글로벌 우량 기관 또한 대거 포섭했다. 발행 물량의 43%를 중앙은행·SSA(정부·국제기구·기관)에 배정했다. 뒤를 이어 자산운용사, 은행, PB가 각각 31%, 24%, 2%를 가져갔다.

KDB산업은행의 국제 신용등급은 AA급 수준이다. 무디스와 S&P, 피치는 각각 'Aa2', 'AA', 'AA-'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이번 딜은 BNP파리바와 크레디아그리콜, HSBC, JP모건, KDB 아시아, 나티시스가 주관했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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