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업인의 증인 채택 문제는 매번 뜨거운 감자다. 많은 기업인이 매년 국감 증인석에 앉게 되는 탓이다. 2020년 60명 수준이었던 기업인 증인은 작년에 140여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종합 국감까지 고려하면 작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역대급 숫자는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기업인 증인 숫자가 200명을 웃돌았던 때도 있다. 기업들은 항상 볼멘소리다. 행정부를 대상으로 국정 현안을 감시해야 할 국감이 기업감사로 변질됐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기업이 이런 비판을 하는 건 국회의원들의 구태가 여전한 탓이다. 기업인을 불러놓고 벌세우기나 망신 주기로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국감에 출석해서 말 한마디 못 하고 돌아가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단 소환부터 하는 증인 채택 관행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보여주기식 국감 증인 채택은 분명히 지양돼야 할 부분이다.

 

이강섭 샤니 대표이사, 국감 답변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이강섭 샤니 대표이사가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10.12 uwg806@yna.co.kr

 

그렇다고 기업인의 국감 출석을 무조건 배제해선 안 될 일이다. 기업인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국감장에 불려 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갑의 횡포와 일감 몰아주기, 산업재해 등에 취약한 산업과 기업에 대해선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서 따져 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기업을 책임지고 있는 총수나 경영진에 국회가 불법과 편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을 기회는 국정감사가 거의 유일하다. 행정부 증인 외에 그해 주요 이슈와 관련된 일반 증인과 참고인을 불러 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이익에 반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그 대상을 가려선 안 된다.

 

많은 기업인이 국감에 출석하는 한편에 대기업 총수의 출석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각 상임위 증인 신청 대상에 총수가 오르기는 하지만, 여야 합의 과정에서 빠지기 일쑤다. 국감 때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이번 국감에도 삼성과 LG, 현대차, SK 등 4대그룹 총수는 모두 증인에서 빠졌다.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대기업 총수들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하는 게 관례처럼 굳어진 탓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국정감사에서 채택된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다. 그러나 국회 고발에도 대부분 벌금형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 때문에 대기업 총수 입장에서 별 타격은 없다. 총수의 국감 불출석이 어느새 당연시되는 이유다. 심지어 대기업의 증인이 최고경영자(CEO)급에서 임원급으로 내려가는 일도 허다하다. 국회·정부 담당 직원을 일컫는 '대관'의 힘이 먹힌 결과다. 국감이 다가오면 상임위별 여러 버전의 증인 명단이 돌아다니는데, 대관 직원들은 즉시 국회를 찾아 보좌진과 밀당을 한다. 증인 배제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가 되면 총수나 CEO 대신 고위임원급의 출석 카드를 제시한다. 수단 가리지 않고 이를 성사시키는 일이 대관 직원의 역할이고 능력이 되는 셈이다.

힘없는 중견·중소기업의 오너와 CEO는 피할 곳이 없다. 국회가 부르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어도 일단 가서 뭇매를 맞아야 한다. 항변할 시간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생활밀착형 기업이라면 굳이 대기업이 아니어도 파급력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루기 쉬운 중소기업을 증인으로 선호하는 의원들이 많다는 얘기도 있다. 국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의 책임있는 목소리는 갈수록 듣기가 어려운 데, 존재감만 높이면 된다는 의원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중소기업만 멍들어가고 있다. 기업은 국감 증인 출석을 사안에 따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국감 증인 선정 과정에서 대기업의 로비력이 세게 먹히는 분위기라면 형평성 문제에 더해 국민의 이익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국회가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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