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주식 투자의 지존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NYS:BBK·사진) 회장은 늘 현인(賢人)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이례적이다. 탐욕스럽다는 지적까지 받는 주주자본주의의 다른 이름, 주식투자전문가가 이렇게 칭송받는 이유는 올해 추수 감사절을 앞두고 또 한 번 드러났다.



◇ 버핏이 올해도 1조원을 기부한 까닭…'정자로또'

버핏은 올해 추수감사절 연휴를 앞두고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해서웨이(이하 버크셔)의 주식 약 8억6천600만달러어치를 가족 자선단체 4곳에 추가로 기부했다.

그는 지난해 이맘때에도 이들 재단에 버크셔 주식 7억5천900만달러어치를 기부했다.

그가 평소에도 여러 번 밝혔던 재산 99%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이라는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그가 현재 보유한 재산은 버크셔 지분 15%, 약 1천180억달러로 달러-엔 환율 1천300원을 적용하면 약 153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다.

버핏은 자서전격인 '스노볼(the snowball)'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기로 한 이유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천문학적인 재산이 '정자로또'의 결과이기 때문에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버핏은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진 덕분에 어려서부터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정자로또라는 말에도 버핏 특유의 수학적 분석이 반영돼 있다.

그의 설명은 명쾌하다. 우선 그는 3억개의 정자 가운데 하나로 선택됐고 3억명의 미국인 가운데 주식 브로커 출신인 상원의원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행운을 누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뛰어났더라도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이 아니라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부를 축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정자로또는 그가 왜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지 한마디로 웅변해주는 말인 셈이다.

버핏은 자식들도 정자로또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독립적인 인격체로 키웠다. 아들 둘 가운데 한명은 음악가로 키웠고 한명은 근사한 목장주로 키웠다. 버핏은 아들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고 그의 아들들도 물려받을 자격이 없다고 교육받았다. 책에서는 아들 둘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표현으로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 돈보다는 가족이 소중하다는 버핏의 철학

버핏은 꼭 10년 전 이맘때에도 미국의 뉴스 전문 보도 매체인 CNN에 장남인 하워드와 손자를 데리고 피어스 모건이 진행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그는 3대가 나란히 출연한 생방송에서 주식투자를 통해서 어떻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돈보다 귀한 자식을 어떻게 올바른 인격체로 키울 수 있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제시했다.

그는 장남인 하워드가 오마하의 집 뒤뜰을 빌려서 텃밭을 가꿀 때도 임대료를 받았다는 일화를 통해 가족애를 전했다. 금융전문가답게 임대료는 당시 아들의 몸무게에 비례해서 올린다는 옵션조항까지 붙였다고 버핏은 소개했다. 버핏은 (몸무게를 억지로 늘리려고) 당시 아들인 하워드에 캔디와 파이를 많이 먹였다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아들인 하워드는 "불행하게도 계속 더 높은 임차료를 내야 했다"며 아버지 전략이 주효했음을 시사하는 등 버핏의 농담에 화답하기도 했다.

버핏은 또 아들 둘, 딸 하나인 자녀들 모두를 공립학교에 보낸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자녀들이 할아버지와 엄마가 다녔던 시내 공립학교를 나왔다"면서"그 학교는 75년 동안 흑인 비율이 20~35%였다"고 말했다.

그는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자녀들은 진짜 세상이 어떤지, 진짜 미국이 어떤지 봤을 것"이라며 "그게 최고의 교육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버핏은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도 "훌륭한 시민이면서 좋은 부모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버핏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낡은 지갑을 보여주기도 했다. 20년쯤 됐다는 낡은 지갑에는 1964년부터 가지고 다닌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가 있었다. 원조 그린 아멕스 카드라며 셀룰러폰처럼 참 좋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핏은 "일반 사람보다는 좀 많은 몇백불 상당의 현금도 있다"면서 "지갑에 다른 카드도 많이 있지만 전부 가족사진이다"고 소개했다.

버핏은 인생에서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은 순간을 선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 아버지와 함께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세상에 사랑만 한 게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버핏의 이런 철학 덕분에 자녀들은 큰 재물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자서전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인격체로 자랐다. 이제 비영리 재단을 이끌면서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고 자란 손자들도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한국의 큰 부자들은 선대의 재산을 놓고 법정 소송을 벌이고 각종 횡령 혐의로 감옥을 드나드는 게 다반사다. 가족을 내치기 위해 법정 소송도 불사한다. 한국에서 버핏의 품격을 기대하기는 시기상조일 듯하다.

n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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