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금융시장이 바짝 얼어붙었다. 홍콩H지수(HSCEI)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주가연계증권(ELS:Equity Linked Security)의 파동 조짐이 일면서다. 특히 일부 지수형 ELS 상품은 '녹인(Knock-in, 원금손실)' 구간 진입을 눈앞에 두면서 채권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풀이됐다. 지수형 등 ELS 설정 잔액의 상당 부분은 채권 형태로 운용되는 탓이다. 해당 상품을 운용하는 증권사가 녹인으로 타격을 입으면 채권 포지션 조정압력에 노출된다.


◇ 2015년의 타임루프

더 놀라운 점은 해당 소동이 약 9년 전에도 판박이 형태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타임 루프(영어: time loop)'다. 타임 루프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SF의 하위 장르를 일컫는다.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은 일정한 시간에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re-experience)하게 된다. 캐릭터는 한 차례 이상 반복되는 시간을 다시 경험하며 순환고리를 빠져나오길 희망하지만, 매번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2015년 8월 무렵에도 국내 굴지의 대형 증권사 두 곳이 홍콩거래소로부터 거래를 정지당하는 등 수모를 겪으며 대규모 손실을 확정했다. 당시 홍콩거래소는 해당 증권사가 홍콩H지수 거래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 이유로 거래를 정지시키며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진 국내 증권사들을 압박했다. 국내 증권사의 과도한 ELS 발행이 홍콩H지수에 부담이 된다는 게 홍콩거래소의 판단이었다. 당시 5월 장중에 14,962.74를 찍으며 15,000까지 넘보던 홍콩H지수는 같은 해 8월 9,280.67까지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홍콩H지수(HSCEI) 일봉 차트: 인포맥스 제공>

◇ 2015년 홍콩H지수 사태 교훈 없이 몸집 되레 19.3조로 키워

홍콩H지수(HSCEI)는 팬데믹에 따른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 장세가 한창이었던 지난 2021년 2월18일 한때 12,271.60까지 치솟았다. 지난 17일에는 장중 5,164.75까지 반토막 이하로 떨어지면서 ELS 녹인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9년 전 파동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다. 파동이 발생한 지 9년여만에 홍콩H지수(HSCEI) ELS는 되레 몸집을 키우며 가입자 10만명의 은행권과 증권가의 매머드급 효자상품이 된 결과물이다. 당국 집계에 따르면 홍콩H지수(HSCEI) ELS는 총판매잔액이 19조3천억원에 이른다. 상반기까지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0조2천억원의 만기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해당 상품을 불완전 판매하거나 운용했다면 금융기관의 책임도 가볍지는 않을 수 있다. 9년 전 해당 소동으로 홍역을 치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막중하다.


◇ 모든 투자는 투자자의 책임이라는 원칙 재확인해야

하지만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가 새삼 확인해야 할 가장 큰 원칙은 따로 있다. 모든 투자는 투자자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해당 파생상품의 재투자 비율이 무려 9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ELS 상품은 기초자산의 가격변화에 따른 ELS 가격변화를 의미하는 델타값을 바탕으로 헤징을 하는 상품이다. 델타헤징의 특성상 '녹인 베리어'를 터치하면 기존 포지션을 뒤집어서 기초자산의 가격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다. 이런 파생상품의 재투자 비율이 90% 이상이라면 투자자의 책임도 무겁다.

금융당국은 이 점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금융은 절도와 규율이 최우선 덕목 중 하나다. 해외의 경우 파생상품 손실에 대해 관련 금융기관의 책임을 묻는 경우는 드물다. 대규모 손실을 떠안은 투자자 개개인의 사정은 딱하지만, 모든 수익은 리스크에 비례한다는 게 금융의 절대 원칙이다. 홍콩H지수(HSCEI)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 파동은 초과수익을 향유한 대가가 리스크로 현실화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금융당국이 도덕적 해이를 용인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혹시라도 있을 증권사 등의 고유 계정이 부실화될 개연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 해당 금융회사들의 고유계정이 하루에도 수백억원씩 오가는 손실을 인식할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 노릇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다. (편집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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