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 대표 상장사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LG화학, KB금융 이사회가 재무상태표의 비효율성을 없애고 제대로 주주환원을 하면 주당 펀더멘털 가치가 50~120% 상승할 수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바로 코스피는 3,600까지 갈 수 있다." (강성부 KCGI 대표)

상장기업의 자사주 소각 필요성을 강조하는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일성이다.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를 앞두고 강력한 주주환원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정도가 대표적인 주주 환원책이었다면 갈수록 자사주 소각에 더 무게감이 실린다. 자사주 매입 자체보다는 소각까지 이뤄졌을 때 비로소 주주가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자사주 소각은 시장에 유통되는 발행 주식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자사주 매입도 시장에서 호재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빛 좋은 개살구라 평가받는다. 주식 수가 줄지 않으니 주당 가치 역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자사주 소각이 매입이나 배당보다 더 강력한 주주환원책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행동주의 펀드를 비롯한 소액주주들의 자사주 소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현대차와 기아, 삼성물산, SK텔레콤 등이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던 대표 기업들이다. 최근에는 SK이노베이션과 HD현대건설기계, 한미반도체 등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창사 이래 처음 소각에 나선 곳들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회계연도에서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다. 장부가 기준 8천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HD현대건설기계는 발행주식 총수의 약 7.3%에 달하는 144만6천여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자사주 소각은 단순히 주가 부양에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 이미지 개선을 꾀할 수 있다. 기업에 돈이 없으면 자사주 소각도 불가한 일이라, 그만큼 미래에 대한 대비나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기업에는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업이 잉여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주주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소각 전 자사주 매입 규모 자체도 글로벌 대비 낮은 수준이라 자사주 소각의 빠른 활성화를 기대하는 건 아직 무리다. 신한투자증권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표준 대비 가장 크게 괴리된 부분이 자사주 매입 비율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비율은 미국 기업과 비교해 평균 2.7%포인트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출처:신한투자증권

 


자사주 소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그 숫자는 매우 제한적이란 얘기다. 이에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지난해 금융위원회의 정책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도입을 건의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검토 끝에 소각 의무화는 없다고 최근 공식화하면서 법제화 시도는 다시 무산됐다. 자사주가 기업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기 때문에 소각을 의무화하면 경영권 방어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재계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쓰이는 건 적절치 않다. 자사주는 기업 자금으로 사들이는 것이니 오너나 대주주만을 위해 쓰여선 안 된다는 얘기다. 회삿돈으로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정부가 인정해주는 셈이 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 시장에서 매년 신규상장 기업은 많아지고, 증자와 메자닌 발행 등으로 주식수는 늘어나는 데 소각은 미미한 수준이라 물량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자사주 소각을 법제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밸류를 올리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소각 의무화의 전면 시행이 어렵다면 단계별 시행이라도 시급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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