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일(韓日)전은 언제나 뜨겁다. 한국과 이웃 나라 일본이 지난 수천 동안 묘한 경쟁 관계를 이어온 결과물이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물론 반도체와 가전제품 등 산업 구조적인 부문에서도 한일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왔다. 여태까지 한국이 상대적인 우위를 점유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후발 주자인 한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가전제품 군 등에서 일본을 앞지른 것으로 평가받으면서다.

다만 최근 증권시장에서는 일본이 완승하고 한국이 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 도쿄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반면 한국 증시는 답답한 게걸음 장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3.1' 만세 운동을 기념해 한국 증시가 휴장했던 지난 1일에도 도쿄증시에서 대형 수출주 중심인 닛케이225 지수는 장중가와 마감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모두 갈아치웠다. 급기야 4일에는 닛케이225 지수가 전인미답의 4만선을 뚫었다. 연합인포맥스 세계주가지수(화면번호 6511)에 따르면 이날 닛케이225 지수는 전 영업일보다 198.41포인트(0.50%) 상승한 40,109.23에 장을 마감했다. 지수는 장중 40,314.64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이후 닛케이225 지수 일봉 차트:연합인포맥스 제공>

대부분 국내 전문가는 일본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추진한 게 도쿄증시 약진의 원동력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국내 금융당국도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정책을 쏟아내면서 국내 증시 부양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변형된 통화신용 정책을 바탕으로 도쿄증시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을 너무 가볍게 보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왔던 일본 도쿄증시는 일본은행이 발권력을 바탕으로 상당 부분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일본은행은 지난 2010년부터 14년 동안 일본의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ETF는 특정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간접투자상품이다. 수요가 많아지면 지수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대규모 매도가 이어지면 지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상품이다. 해당 상품은 개별주식처럼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다.

일본은행이 보유한 ETF 보유잔고는 60조엔대를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환율로 따져도 원화 기준으로는 54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전 세계 최대 기관투자자인 일본공적연금(GPIF)의 일본 주식 보유 규모가 50조엔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이례적인 행보다.

발권력 혹은 '시뇨리지(seigniorage)'가 존립 근거인 중앙은행의 행보로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이례적이다. 무위험 안전자산인 국채 보유도 사실상 제한받는 중앙은행이 위험자산을 대거 편입한 거의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시뇨리지란 봉건제도에서 시뇨르(seigneur:영주)들이 화폐주조를 통해 이득을 챙겼던 데에서 유래한 말로,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의 실질 가치에서 발행비용을 제외한 차익을 의미한다.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은 실물 경제 재정의 영역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원칙적으로 금기시돼 왔다.

이 밖에도 일본은행의 총자산은 무려 740조엔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일본국채(JGB)로 전체 발행물량의 절반 이상을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보유하고 있는 기형적인 형태다. 일본은행이 '수익률곡선 제어정책(YCC:Yield Curve Control)'까지 도입해 일본국채 수익률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관리한 결과물이다. 10년물 기준으로 국채 수익률을 당초 상한선이 연 0.1% 수준 안팎이었다가 이제 1.00% 수준까지 확대됐다. 재정적자가 GDP의 250%를 넘어선 일본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의 실물 경제 재정의 영역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원칙적으로 금기시돼 왔다. 당장은 금기를 어긴 일본은행이 성공한 듯 보인다. 일본은행이 ETF를 매수하기 시작한 2010년 1만대에 불과했던 닛케이225 지수가 4만선 상향 돌파에 성공하면서다.

이제 정통 경제학자 등은 이게 우리 금융시스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면밀한 분석을 제시할 차례다. (편집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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