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속 한 장면
[출처 :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인포맥스)○…소수 민족 이민자의 이야기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까.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오는 11일 96번째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경쟁작 모두 쟁쟁하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플라워 킬링 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등 감독의 명성과 배우진 면면이 화려하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1988년생 셀린 송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이번 작품이 장편 데뷔작이다. 배우진과 제작비도 할리우드 대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촐한 편이다.

백인, 50대 이상의 남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패스트 라이브즈'는 의심할 여지 없는 비주류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국내 영화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유가 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한 CJ ENM이 공동 투자배급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오스카 4관왕 기생충의 영광을 만든 건 봉준호 감독의 탁월한 연출과 짜임새 있는 각본이 기반이 됐지만, CJ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아카데미는 시상식 전 수개월간 일명 '오스카 캠페인'이 열린다. 제작자는 그 기간 네트워킹 파티에 참여하고 작품에 대한 홍보와 설득에 집중한다. 수상작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의 투표로 결정된다.

수상을 위해선 영화계의 화려한 인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기생충'의 배급사 CJ가 물심양면으로 지원에 나섰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돌풍을 일으킨 뒤 국내외 언론은 한 인물을 주목했다.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이자 삼성 이병철의 장손주,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출처 : CJ ENM]

 


'미키 리'로 불리는 이미경 부회장은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 부의장을 역임하며 할리우드의 거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문화계 대통령',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비저너리' 등 수식어와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그러나 그도 한때 콘텐츠 산업 변방국 출신일 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지난 1995년 3월, 이미경 부회장은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갔다. 미국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에 3억달러를 투자하기 위해서다.

태평양 건너 식품 사업을 하던 기업이 엔터테인먼트의 고장 할리우드에 첫발을 떼며 콘텐츠 기업으로 확장한 순간이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한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식품회사에 불과했다"며 "(삼성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동생과 나는 회사를 정말로 확장하고 싶었다"라고 당시 투자 결정을 회고했다.

지난 1996년 당시 제일제당그룹은 공식 출범하고 미디어·엔터테인먼트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후 식품과 문화는 CJ그룹의 두 축을 담당했다.

특히 영화는 수익성과 작품성 모두를 놓치지 않으며, 국내 유망한 감독의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봉준호, 박찬욱, 최동훈, 류승완 등 내로라하는 스타 감독과 변성현, 조성희 등 신예들과도 협업했다. 해외 평단의 호평을 받아낸 '취화선', '마더', '박쥐', '브로커' 등 모두 CJ그룹의 손을 거쳤다.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대에 오른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와 미키 리에 감사드린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수·합병(M&A)도 활발히 진행했다. 지난 2016년 영화 제작사 JK필름을 인수했다. 지난 2019년 드라마 제작사 '본팩토리'와 지티스트를 품에 안았다.

지난 2021년 '터미네이터', '미션 임파서블'을 만든 할리우드 유명 제작사 스카이댄스 미디어 소수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스튜디오 '엔데버 콘텐트(현 피프스 시즌)'를 손에 넣으며 명실상부한 할리우드의 '메이저'로 부상하는 중이다.

다만, 최근 CJ ENM의 경영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해 146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피프스 시즌은 무리한 인수라는 평가와 함께 재무에 타격을 날렸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153.0%, 순차입금의존도는 25.7%다. 지난 2021년 해당 지표는 각각 88.9%와 8.6%에 불과했다.

CJ ENM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피프스 시즌은 일본 엔터테인먼트 토호와 손을 잡았다. 실적에 발목을 잡던 OTT 티빙은 조만간 웨이브와 합병 조건에 대해 합의할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CJ ENM이 '패스트 라이브즈'의 수상을 발판 삼아 화려한 부활을 알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10일 오후 7시(현지 시간) LA 돌비극장에서 열린다.(기업금융부 박준형 기자)

jhpark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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