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조양호 전 회장, 사내이사 연임 실패
이듬해 이사 선임 기준 '특별결의→일반결의' 완화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국민연금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003490] 사내이사 재선임 안에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지분 7.61%(의결권 기준)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하지만 대한항공 안팎의 기류는 평온하다. 주주총회 당일 개표 직전까지도 상당한 긴장감이 흘렀던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조 회장이 무난히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020년 정관을 고쳐 이사 선임 문턱을 낮춘 영향이다.

소감 밝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1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오는 21일 강서구 본사에서 '제62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추진한다. 조 회장은 2016년부터 8년째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맡아오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전날(14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고 조 회장 선임안에 반대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조 회장이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이유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 연임에 제동을 건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직전 연임(2021년) 때도 이번과 동일한 사유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우기홍 사장 등 다른 사내이사나 심지어 사외이사 선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의 경우 정갑영·박현주 사외이사 후보가 '계열사 재직 시 명백한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타깃이 됐다.

사실 재계에서는 한진그룹과 국민연금 간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대한항공 입장에서 악연이자 국민연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연금이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며 유독 대한항공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국민연금(11.70%) 등의 반대에 막혀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선 '1호 사례'였다.

당시 국민연금은 조 전 회장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문제 삼았다. 이때 조 전 회장은 납품업체들로부터 200억원 규모의 통행세를 수수하고 자신의 형사사건 변호사 비용을 회삿돈으로 지불하는 등 횡령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이 밖에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각종 갑질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이례적으로 대한항공에 공개서한을 보내 관련 사항에 대한 입장과 근거자료 제출, 경영진 비공개 면담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조 전 회장 선임안이 부결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사 선임 기준'이다. 대부분의 상장사는 상법에 따라 '출석 의결권 과반, 발행주식 4분의 1 이상의 찬성(보통결의)'으로 이사 선임안을 처리하지만, 대한항공은 달랐다.

당시 대한항공 정관에 명시된 이사 선임 기준은 상법 대비 높았다. '출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특별결의사항'이었다.

이는 출석 주주의 3분의 1이 반대하면 부결된다는 의미다. 1999년 외환위기 당시 외국계 자본의 유입이 확대되자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사 선임 기준을 상향 조정한 영향이다.

2019년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전 회장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됐다.
[출처:전자공시시스템]

 

실제로 2019년 주총에는 전체 주주의 73.85%가 출석, 참석 주주의 63.99%가 조 전 회장 연임에 찬성했다. 다른 상장사처럼 이사 선임 기준이 '과반'이었다면 무난히 통과됐을 수치다. 하지만 대한항공에선 가결 기준(출석 3분의 2)을 맞추지 못해 부결됐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출석 주주의 36.01%가 반대표를 던져 재선임을 저지했다.

 

결과적으로 '특별결의'에 '2대 주주의 반대'가 더해져 조 전 회장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날벼락을 맞은 대한항공은 이듬해(2020년) 주총에서 이사 선임 기준 완화를 위한 정관변경을 추진했다. 당시 업계에선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임기 만료를 1년 앞두고 선제적으로 정관을 고친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때도 국민연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주총 결의요건을 변경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상법보다 과도한 요건을 법령과 일치시키기 위한 조치라며 주주 설득에 나섰고, 결국 통과시켰다. 이에 현재는 대한항공도 이사 선임안을 보통결의로 처리한다.

대한항공이 2020년 정관변경한 내용.
[출처:대한항공 정관]

 

현재 대한항공의 주요 주주는 ▲한진칼 및 특수관계인(27.02%) ▲국민연금(7.61%) ▲우리사주조합(3.27%) 등이다. 나머지 외인과 기관, 소액주주 등은 60.14% 정도로 추산된다.

 

지분구조만 놓고 봤을 때 국민연금이 이번 주총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엔 한계가 명확하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국민연금보다 4배 가까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주총 참석률이 저조한 것도 대한항공에 유리하다. 출석률은 2022년 55.57%, 2023년 56.19%로 50% 중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사실상 최대주주 지분만으로 거의 가결이 가능한 수준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이 주주권익을 침해했기 때문에, 그 결정에 관여한 이사들의 선임을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인수 결정 이후 주가가 올랐다"며 "우호 지분 등을 감안할 때 사내이사 선임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j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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