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지난 2008년 삼성전자가 미국의 플래시메모리카드 회사인 샌디스트(SanDisk)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무라이본드(엔화채권) 발행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당시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금융시장 상황이 악화된데다 샌디스크 인수까지 철회하면서 채권발행 계획은 결국 백지화됐다.

작년 말에도 삼성전자가 중국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위해 딤섬본드(위안화 채권) 발행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러나 유로존 문제로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된데다 위안화 투자 수요로 딤섬본드 금리가 급등하면서 삼성은 발행 계획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는 또다시 미국 법인(SEA)을 통해 10억달러 규모의 해외채 발행을 추진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채권발행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국내외 금융시장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지난 2001년 이후 10년 넘게 '무차입 경영' 기조를 유지해왔던 삼성이 채권발행을 계기로 재무정책을 변경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번 미국법인의 채권발행 추진이 삼성전자 본사의 재무기조 변화로 바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사상 최대투자를 계획한 삼성이 저금리 상황 속에서 미래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채권발행을 통한 현금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삼성전자 미국 법인이 해외채 발행을 추진하게 된 것은 지난달 초 풀가동에 들어간 미국 반도체 공장의 설비라인을 증설하기 위해서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는 올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투자금이 필요하다. 사상 최대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은 올해 작년보다 2조원 늘어난 25조원을 설비투자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10조원 가량은 R&D 분야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처럼 어느 때보다 많은 투자금이 필요해진 많큼 삼성으로서는 자금 확보의 한 방안으로 채권 발행을 검토해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16년 전 마지막으로 해외 채권을 발행했을 때에도 조달된 자금을 TFT-LCD와 64MD램 설비투자, 중남미의 통신공장 증설 등 투자금으로 사용했다.

또, 조달 금리가 낮아져 발행 여건이 어느 때보다 좋아진 점도 삼성이 채권발행에 나설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최근 유로존 위기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으로 꼽힌 채권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 모두 채권 발행 금리는 낮아지는 추세다.

연합인포맥스의 발행금리추이(8472 화면)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받게 될 등급(AAA)기준으로 3년물 회사채의 민평3사 평균금리는 지난 27일 기준으로 3.63% 수준까지 떨어졌다. 불과 1년 전 4.4%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며 금리가 상당히 낮아진 것이다.

또, 지난 12일 발행된 210억달러의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가 1.90%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해외채 발행 조건도 좋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조달금리가 낮아져 발행조건이 개선되자, 많은 기업들이 회사채를 통해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연합인포맥스 리그테이블의 채권인수 실적(화면 8450번)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에 전체 IB들이 인수한 회사채 규모는 27조9천779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6%나 증가했다.

특히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 우려가 커지면서 미래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해 자금을 확보할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삼성은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만 11조원을 확보하고 있어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가장 튼튼한 자금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경쟁하는 세계적인 IT 업체들과 비교했을 때는 삼성의 자금력이 충분하지만은 않다.

실제로 최근 삼성의 가장 강력한 경쟁업체로 떠오른 애플은 현금보유액은 삼성전자의 10배 수준인 976억달러(약 110조원)에 달하고, 구글도 4배 이상 많은 446억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삼성으로서도 최근처럼 조달 금리가 낮아졌을 때 채권발행을 통해 추가 자금을 확보해 내부자금 소진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크레딧업계 한 관계자는 "매년 사상 최대수준의 투자를 집행하면서 자금수요는 커진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경로를 통해 채권 발행을 꾸준히 시도하는 모습"이라며 "특히 최근처럼 불확실성이 커져 자금확보 필요성이 커진 상황에서는 채권발행 조건이 유리하다면 굳이 무차입 기조를 고집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근처럼 좋은 여건일 때 적정량을 발행한다면 채권발행이 건전한 재무상태 유지에 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해외법인의 경우 채권발행에 나설 가능성이 꽤 크다"며 "다만, 한국 본사의 경우 '무차입 기조'의 상징성 때문에 채권발행을 다소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아직 무차입 기조를 벗어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언제나 자금조달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유리한 방안을 택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다만 현재로서는 재무정책 방향을 크게 변화시킬 계획이나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이다"고 말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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