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소영 기자 = 전설이 돌아왔다. 채권 애널리스트 1세대로 불리는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 팀장(상무)이 그 주인공이다. 냉철한 분석과 탁월한 전망으로 2000년대 채권시장 이슈의 중심에 서있던 그가 채권시장에서 벗어나 운용, 자산관리까지 두루 거치고 여의도로 복귀했다.

김일구 상무는 29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미 달러화와 엔화 가치 약세로 빼앗긴 가격경쟁력을 가져와야 하고, 일정부분 자본유출을 유도해 환율상승을 일으키는 것도 방법이다. 이머징 국가인 한국이 경기 회복을 위해 제로수준까지 금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로 잃어버린 가격경쟁력은 가격으로 되찾아와야한다는 심플하지만 강렬한 주장이다.

김 상무는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로의 복귀에 대해 "채권이라는 상품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10년 전에 주식과 채권을 모두 겸할 수 있는 운용사로 영역을 확장했다"며 "다시 여의도로 복귀한 것은 채권에 한정짓지 않은 포괄적인 자산관리 전략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일구 상무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86학번으로 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후 장은경제연구소에서 금융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LG경제연구원,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前 굿모닝신한증권), 랜드마크자산운용, KDB대우증권, 시티은행 WM상품부를 두루 거친 금융통이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 '롤링(Rolling)효과' 이론 정립…채권시장 평정

2000년대 초반 채권 업계에 있던 참여자들은 '김일구'라는 이름에 무게감을 느낀다. 그가 도대체 어땠기에 채권시장의 전설이 됐을까.

김 상무는 '롤링효과'를 보고서에 쓴 것이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보고서 전망이 시장과 다르게 움직이는 괴로운 시기를 보내면서 연구를 거듭한 결과였다. 엇나간 전망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롤링효과는 금리 수준과 관계없이 잔존만기가 줄어들면서 수익률이 하락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효과를 말한다.

그는 "당시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금리가 6개월간 계속 오르니 3~4개월째가 되면서 못견디겠더라"며 "밥도 안넘어가고 커피만 하루에 열몇잔을 마시며 보고서를 쓰다가 위궤양에 걸렸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우연히 인터넷을 하다가 '롤링'이라는 단어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문득 채권시장에도 롤링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아이디어가 스쳤고 여러 문헌들을 찾았지만 채권의 롤링에 대한 설명이 없어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보고서에 넣게 되었다.

김 상무는 당시에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으로 보고서에 썼지만 롤링효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의 반응 역시 물음표였다고 한다. 보고서를 낸 지 3~4개월 후 이 전략으로 운용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해보니 롤링이 있다고 피드백을 보내왔고, 롤링효과는 채권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이 됐다.

◇ 고환율정책으로 경기 살려야…한국경제 2막 진입

김일구 상무는 하반기 채권시장 전망에 대해 금리와 환율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운을 뗐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도 결국 금리를 낮추고 자국 통화가치를 하락시켜 경기를 부양했다며, 한국 역시 금리인하와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해 수출 중심으로 경기를 살려야한다고 말했다. 내수를 살리는 것이 탄탄한 경기회복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는 엔저로 잃어버린 가격경쟁력을 되찾아야한다고 조언했다.

김 상무는 "기준금리가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2% 이하로 낮아지면서 시장참여자들은 이미 심리적 충격을 받았고 해외투자가 늘어나는 (자본유출) 결과를 가져왔다"며 "그만큼 기준금리는 환율과 직결돼있는 상황인 만큼 환율이 최근 흐름처럼 상승한다면 굳이 금리를 낮출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익률곡선은 1~3년 구간은 가팔라지는 반면 그 이상 구간은 평탄화될 것으로 김 상무는 전망했다. 장기물은 국내 보험사들의 '듀레이션 니즈'에 따라 오르기 쉽지 않은 환경인 반면 단기구간은 미국 금리가 오르면서 스티프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일구 상무는 저성장, 고령화 등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한국 경제는 익숙하지 않은 다른 스테이지(Stage)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현재 상황을 비관과 낙관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김 상무는 한국은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평가하지만 일본 국민들이 그 기간동안 불행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디플레이션과 엔화가치 상승 등으로 물가가 하락하면서 고정수입으로 살아가야하는 은퇴자들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고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경제에는 성장통이 있고, 현재 한국 경제는 다른 계절에 진입하는 문턱이라고 생각한다"며 "겨울이 올때는 당장 추울 수 있지만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에는 간편한 옷을 입으며 상황에 맞게 적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 한국 금융 차세대 먹거리는 자산관리

김일구 상무는 금융회사들이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며,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분야가 블루오션이라고 진단했다.

김 상무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은 모든 금융관리가 연금을 기초로 운용전략을 수립하는데 한국은 그런 기본바탕 없이 주식, 채권을 바라본다"며 "한국은 유교문화권으로 부양에 대한 책임이 연금과 같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자식들이 부모를 더이상 부양할 수 없는 상황이 왔고, 은퇴설계는 앞으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에서 인식하는 리테일은 수수료의 싸움이지만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고, 은퇴인구가 늘어나면서 은퇴소득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국내 자산관리는 은퇴를 기본으로 하고 그 이후에 초과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 되야한다"고 말했다.

syj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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