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현의 연금투자] 수탁자책임과 국민연금을 위한 변명
[원종현의 연금투자] 수탁자책임과 국민연금을 위한 변명
  • 승인 2021.01.2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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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수탁자전문위원회는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된 의결기구다. 기금운용위원회로부터도 독립되어 의결권 행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정부로부터 간여를 막기 위함이다. 물론 모든 사항을 다 의결하지는 않는다. 의결권과 관련하여 1차적으로 기금운용본부에서 결정하며, 위탁운용사에 위임한 건에 대해서는 별개로 한다. 그중에서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기 곤란한 사항에만 수탁자전문위원회로 상정한 건이 논의되는 것이다. 즉, 기존의 특정 기준에 따라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만이 전문위원회로 올라온다는 의미다.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이 쉽게 결정된다면 그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회의 때마다 격렬한 논쟁이 있다. 매건 마다 회의록은 책 한권 두께다.

수탁자 전문위원회의 의결권 결정에 대하여 어떤 결정이 되든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는 의결권 행사 결정에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답을 드린다. 절대로 특정 의도에 따라 의결권 행사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구조상 그럴 수도 없다. 수탁자전문위원들 모두 다 국민연금 관계기관에서 추천된 자로서 나름의 자부심이 강한 분들이다.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사용자, 노동자, 자영업자에 따라 다른 입장일 수도 있고, 한쪽에서는 국민연금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쪽에서 보면 해가 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만큼은 합리성이나 논의의 일관성이 우선 된다는 점이다.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기본 목적은 단기적 주가 상승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경영상 그 절차의 합당함과 내용의 정당성을 포함하여 장기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수익만을 추구하는 문제라면 국민연금이 굳이 공해기업, 사행성 기업 등에 대한 투자를 꺼릴 필요도 없다.

국민연금의 투자는 주가의 상승과는 별개로 그 기업의 절차적, 법적 정당성 역시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다. 예를 들어 합병을 함에 있어서 피합병 기업에 대한 실사나 가치 평가가 유효하였는지도 매우 중요한 판단 요인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대한항공 주주총회 안건의 경우 인수 과정에 있어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기업실사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후 문제가 발생한 경우 인수 절차의 철회가 가능한 조항이 있었는지는 국민연금 운용에 중요한 문제다. 이미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바 있다. 물건을 사는데 그 물건값이 맞는 것인지 확인이 안 되고, 문제가 있을 때 물릴 수도 없는 것을 사는 것에 바로 찬성한다는 것은 수탁자로서의 책임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ISS 역시 반대의결을 권고한 건이다.

실제 주주총회에서의 투표 결과는 55.73% 출석 중 69.98% 찬성으로 나왔다. 그러나 찬성 측의 지배주주 특수관계인(31.13%)과 반대한 국민연금(8.11%)을 제외하고 출석자를 기준으로 비지배주주의 찬·반을 추정해 보면, 찬성은 7.87%인 것에 반해 반대는 8.62%로 반대가 우세하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무효표나 기권을 포함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판단이 시장과 다르다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우리사주 조합(6.39%)도 모두 찬성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민연금이 반대한 사항에 대해서 의사가 관철된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기업의 경영권과 관련된 사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전패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기관투자자로서 1대 혹은 2대 주주라 해도 여전히 기업을 소유하는 재벌구조에서는 소수 주주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그러나 질 것이 명백하다고 기금 이익에 침해될 것이라고 판단한 사항을 뒤집는 것은 2천만 가입자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위다. 이기기 위해 다른 투자자들이나 운용사들과 연합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활동은 나름의 길을 갈 뿐이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유사 사례에 대한 국민연금의 일관성을 공시하는 효과도 있다. 패배가 확실하다 해도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에 국민연금이 함께 하자는 원칙을 양보할 수는 없다.

사족으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활동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아 있는 2015년 7월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건을 상기하고자 한다. 당시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이 두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서 발생한 문제였음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에 대한 찬성률 역시 69.53%로 높은 수치였다.

그리고 지금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개편돼 민간전문가 위주로 독립된 의결기구로 활동하게 된 배경에는 과거 이러한 잘못을 반복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이 있다. 전문위원회 위원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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