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금융당국이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영구채권을 자본으로 인정하는데 문제가 있다며 뒤늦게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달 5일 30년(연장가능) 만기 5억달러 규모의 영구채권 발행을 이미 완료했다.

올해 2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9월 말 프라이싱과 북빌딩을 모두 마치기까지 7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거쳐 발행에 성공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5억달러의 '자본'을 새로 확충하게 되면서 부채비율을 100% 가까이 낮춰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일반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영구채권을 발행했다는 '자부심'과 '기쁨'은 불과 한 달만에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일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에 대한 자본성 여부를 검토하라며 회계기준원에 지시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채만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게 됐다.

금융위는 "회계처리의 해석 권한은 회계기준원에 있다"면서 일단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회계기준원에 자본성 검토를 지시한 것 자체가 사실상 '자본으로 인정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위는 왜 발행이 완료된 지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 갑자기 문제를 제기한 것일까.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권의 발행구조가 국제회계기준(IFRS)에서 자본으로 인정하는 틀을 벗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구채권은 형태는 채권이지만 속성은 자본인 신종자본증권, 즉 하이브리드채권이다.

내용이나 실질을 중요시하는 IFRS에서는 ▲후순위성 ▲만기의 영구성 ▲이자지급의 임의성의 성격을 가진 하이브리드채권을 자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선 후순위성은 재산 분배의 순서가 후순위임을 의미한다.

기업이 도산할 때 재산 분배는 '담보부채권-선순위채권-후순위채권-하이브리드채권-보통주'의 순서대로 이뤄진다.

후순위성은 보통주를 제외하고 모든 채무에 대해 후순위 지급 순위를 가진다는 것으로 하이브리드채권이 자본적 속성을 갖게 되는 핵심 요소다.

만기의 영구성은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영구적으로 지급하거나, 만기가 있더라도 만기가 발행자의 의도에 따라 연장이 가능해 사실상 만기가 영구적임을 뜻한다.

이자지급의 임의성은 발행자가 정해진 시일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유예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자를 지급할 수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러한 요건에 맞춰 영구채권을 발행했다.

만기를 30년으로 특정했지만 추가로 늘릴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사실상 만기가 없는 것과 같다. 또 이자지급을 유예할 수 있는 조건도 포함했다.

후순위성과 관련해서는 뚜렷히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IFRS상 자본과 부채의 기준에는 상환 순서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2006년 3월의 IFRS 해석자료를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는 문제가 될 만한 요소들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후순위성을 뒷받침할 만한 요건이 적시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핵심 요건이 빠지게 되면 자본이 아닌 부채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자자 보호 문제와 연결되는 사안이어서 관심있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옵션 조항들에 대해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은 발행 5년 뒤 발행자가 조기상환을 할 수 있는 콜옵션이 붙어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5년 이후 7년까지 추가로 금리를 500bp, 7년 이후에는 200bp를 추가로 더 줘야 한다(스텝업 조항).

5년 뒤 막대한 금리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면 콜옵션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만큼 사실상 영구채권이 아닌 만기 5년짜리 채권과 같다는 것이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투자자가 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 행사 조건도 관심거리다.

콜ㆍ풋옵션 조항은 원금의 조기상환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여서 자본적 성격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발행 주관과 금융자문을 맡았던 산업은행은 적극 반박하고 있다.

한국채택 IFRS(K-IFRS)에서는 '발행자가 청산되는 경우만 채권자가 결제를 요구하는 것은 발행자의 금융부채로 보지 않는다(1032호 문단 25)'면서 만기가 30년이고 추가로 연장할 수 있는 만큼 사실상 만기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채가 아닌 자본이라는 설명이다.

콜옵션 조항이 삽입된 것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5일 "전세계적으로 발행된 일반 기업들의 영구채권 가운데 옵션 조건이 붙지 않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영구채권을 사는 투자자들이 만기가 무한하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 요건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스텝업 조항에 대해서는 '스텝업은 콜옵션을 유도하는 경제적 의무이지, 계약상 의무가 아니어서 자본으로 인정한다'는 K-IFRS(1032호 금융부채)의 조항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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