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의 시선이 온통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행보에 쏠려있는 가운데 최근 뉴욕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금리와 환율 등 가격변수들이 통화정책을 재료로 삼아 출렁이는 모습이 관측됐다.

유로존이 바로 그곳인데, 독일과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달 26일 각각 마이너스(-)0.3969%와 -0.0417로 약 1개월래 최고치를 찍은 후 상승세를 더해 지난 3일에는 장중 고가 기준으로 7월 중순 이후 가장 높은 -0.3454%, -0.0004%까지 레벨을 높였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중앙은행(ECB) 관계자들의 발언을 시장이 매파적으로 해석한 데 따른 것이다.

ECB의 필립 레인 이코노미스트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채 금리가 급등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가 유로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며, 6월에 예상했던 역내 성장세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로버트 홀츠먼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달 31일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 채권 매입과 관련해 '어떻게 줄일지 생각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며 '9월 회의에서 우리는 팬데믹 부분을 마무리 짓고 인플레이션 부분에 초점을 두는 것을 논의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클라스 노트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와 프랑수아 빌레이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자산매입 속도 둔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결국 이달 9일에 있을 ECB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자산 매입 프로그램과 관련해 논의가 오갈 것이라는 시그널이 나오면서 시장이 출렁인 것이다.

이에 더해 유로존의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내면서 역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과 관련한 시장의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유로존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로 집계됐는데, 예비치이긴 하지만 이대로 확정되면 2011년 1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로 기록된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넘어서도, 일시적이기만 하다면 이를 허용할 것'이라던 ECB의 스탠스가 시험받게 됐다고 썼다. 실제로 유로존의 물가 압력이 일시적일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베렌버그는 '공급 병목 현상과 같은 기저효과가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로존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더 상승해 11월에 최고 3.5%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환율도 움직이고 있다. 5월 이후 내리막을 걸었던 유로-달러 환율은 이달 1일 한때 1.18570달러까지 상승해 지난달 5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유로-엔 환율도 같은 날 130.45엔까지 상승해 지난달 2일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유로-달러와 유로-엔은 지난 3일 기준으론 1.19089달러와 130.73엔까지 고점을 높였다.

ECB가 이달 회의에서 기존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하기는 하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3월) PEPP 종료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ECB가 직면한 중요한 결정은 PEPP 이후 양적완화(QE)에 대한 합의인데, 이 합의는 아직 먼일처럼 보인다'고 진단했다. 은행은 '9월 회의에서는 12월까지의 채권 매입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며, 현행 월 800억 유로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9월 회의가 ECB 통화정책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이달 초 분석 보고서에서 'ECB가 9월 회의에서 채권 매입 속도를 줄이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TD증권도 ECB가 올 4분기 PEPP의 속도를 줄일 것이라며 '(ECB의) PEPP 채권 매입량은 12월에 계절적 요인으로 줄어드는 것을 포함해 매월 약 700억 유로 규모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선 8월 비농업 부문 고용이 전월 대비 23만5천 명 증가로, 시장 예상치인 72만 명을 크게 밑돌면서 연준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규모 축소) 시간표가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다시 강화되는 모습도 보인다. ECB 통화정책회의를 며칠 앞두고 어쩌면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의 신호탄이 점화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국제경제부장 이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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