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추석 연휴 기간이었던 2008년 9월 15일. 뉴욕발 뉴스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당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파생상품 손실에서 비롯된 약 6천130억 달러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날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전 세계 주요 증시는 일제히 폭락했다. 이후 리먼 브러더스와 비슷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가진 월가의 다수 금융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고, 이는 곧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 경제 부진으로 이어졌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 사태를 계기로 갑작스러운 돌발 변수가 금융 시스템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절감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의 기억 때문인지 올해 추석 연휴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와 관련해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헝다의 디폴트 관측 속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증시가 급락했고, 금리와 환율 등 금융시장의 다른 가격 변수도 출렁였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리스크에 민감한 가상화폐 시장의 반응은 더 격렬했다. 추석 연휴 전 4만 달러 중후반 레벨에서 등락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연휴 기간 중 장내에 숏 심리가 만연한 가운데 해외 거래소 기준으로 한때 4만 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또 국내외 거래소 간 매도 강도의 차이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확대로 이어져 차익 거래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헝다는 이달 23일 지급해야 했던 채권 이자 중 2억3천200만 위안 규모의 위안화 채권 이자 지급 문제를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달러 채권 이자 8천350만 달러는 지급하지 못했다. 다만 30일의 이자 지급 유예기간이 있기 때문에 공식 디폴트 선언은 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향후 헝다의 유동성 위기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지 여부다. 다수 전문가는 이번 사안이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큰 파장을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 당국이 위기가 자국 부동산 시장과 은행권으로 본격 전이되기 전에 개입해 부채를 조정하고 필요할 경우 헝다를 국유기업에 인수시키는 방법으로 충격을 완화할 것이라는 게 이런 관측의 근거다.

실제로 인민은행은 최근 열린 금융정책위원회에서 "부동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유지하고 주택 소비자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헝다 위기로 인민은행이 평소보다 많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으며, 이번 방침에 따라 인민은행이 향후 추가 조치를 꺼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당국이 이제 와서 정책 기조를 바꿔 헝다 구제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도 있다. '공동 부유' 국정 기조를 전면에 내세운 중국 공산당이 장기 집권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고통이 따르더라도 부동산 부문으로 흘러가는 자금 차단에 나선 결과가 헝다 사태라는 것이다.

더욱이 헝다의 연내 달러 채권 이자 지급 규모는 5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달 23일 지급해야 했던 금액의 6배가 넘는 규모의 이자 지급이 남아 있는 셈이다. 해당 달러채는 총 7종목으로, 오는 10월 11일과 12월 28일이 주요 데드라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달 11일에는 3개 종목에 대해 1억5천만 달러에 가까운 이자를 내야 한다. 이자 지급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것은 오는 12월 28일로 2개 종목에 대한 총 이자가 2억5천만 달러를 넘어선다.

한편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29일 오후 헝다 사태를 주제로 웨비나를 연다. 이번 세미나에선 헝다 사태 추이와 전망, 중국 부동산 개발사 부실 가능성, 중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 변화 가능성, 헝다 사태 전염 리스크와 중국 금융시스템, 거시적 차원에서 본 헝다 부실과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을 논의한다. 헝다 사태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엿볼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 내용이 주목된다. (국제경제부장 이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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