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서울=연합인포맥스) 2013년 3월 15일 일본 참의원(상원)은 '아베노믹스(경기 회복과 장기 디플레이션 및 엔고 탈출을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경제정책)'를 실무적으로 총괄할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 내정자에 대한 인사동의안을 가결했다. 전일 중의원(하원)의 인사동의안 통과에 이은 것으로, 이로써 구로다 체제의 출범이 공식화됐다.

구로다 총재는 예전 대장성(재무성) 조세 부서인 주세국(主稅局)에서 잔뼈가 굵었고, 국제금융국장(재무성 국제국장), 국제금융 담당 재무관을 지낸 뒤 2005년부터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로 재직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의회 청문 과정에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과감한 금융완화정책을 여러 차례 공약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2년 내 물가 2% 상승 목표 달성'을 기치로 내걸고 양과 질 두 가지 측면에서 대담한 금융완화정책을 단행했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총선 공약을 실천하는 집행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일본 소비자물가 추이
연합인포맥스






2016년 1월에는 마이너스 금리를 사상 처음 도입했고, 같은 해 9월에는 10년물 국채 금리를 '제로(0%)' 근처에서 움직이게 하는 장기금리목표제를 도입했다. 그는 물가를 약속했던 수준으로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8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하는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2018년 3월 연임에 성공해 2023년 4월 8일까지 5년간 일본의 통화정책을 총지휘하게 됐다.

최근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기로 하면서 엔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달러당 136.712엔)으로 하락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다. 이에따라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수정할지 관심이 쏠리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일본은행은 이달 17일 열린 정책위원회·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정도로 유도하도록 상한 없이 필요한 금액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대규모 금융완화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구로다 총재는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환율을 타깃으로 정책을 운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물가 안정이 금융정책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달러-엔 환율 추이






엔화 약세와 곡물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일본의 4월 소비자물가는 2.1% 상승해 2015년 3월(2.2%) 이후 7년 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일본은행은 금융완화와 엔화 약세를 통해 투자 증가와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을 꾀하고 이것이 임금 인상과 소비 확대로 이어져 물가가 상승하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또 금리 상승 시 일본 정부 부채의 대부분인 10년 만기 국채 이자 상환 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점도 계산에 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채 잔액은 작년 말 기준 처음으로 1천조 엔을 넘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1~2%포인트 올리면 정부의 연간 원리금 부담액이 3조7천억∼7조5천억 엔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이 더딘 점도 문제다. 일본에선 3월 말까지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제한됐다. 이 때문에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보다는 코로나19 피해 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먼저 논의되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둔화를 우려하는 다른 선진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1970~1980년대 폴 볼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공격적 금리 인상을 무기로 한 단호한 인플레이션 대처로 1980~1990년대 미국의 호황을 이끌며 '철의 볼커'라는 명성을 얻었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은 올해 3월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볼커의 사례를 좇겠다고 언급했다.



아베 신조(우) 전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일본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구로다 총재의 역할은 이와는 달라 보인다. 장기간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온 일본 입장에서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는 최근의 경제 상황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구로다 총재는 2020년 9월 당시 아베 총리의 퇴임과 관련해 "(나는) 도중에 그만둘 생각이 없다"며 2023년 4월 8일까지인 임기를 채우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자민당 '상왕'으로 여겨지는 아베 전 총리는 최근 젊은 의원들의 모임에 참석해 구로다 총재의 후임 인선과 관련해 "다음 (일본은행) 총재도 제대로 거시경제 분석이 가능한 분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달 10일 실시되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를 계승한 기시다 후미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60% 이상으로 여당의 과반 의석이 유지될 전망이다. (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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