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박경은 기자 = 올해 초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본격화한 뒤 자본시장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기업공개(IPO) 시장이었다.

풍부한 유동성에 기대 공모 규모나 공모가와 관계없이 IPO 흥행이 보장됐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우량기업도 기관투자자의 투자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 상장을 철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기관투자자의 자금 조달 비용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IPO 기업들도 공모 흥행 여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연초 이후 신규 상장을 위해 거래소에 심사를 신청한 기업 중 22곳이 규정상 정해진 기간인 45영업일 이내에 결과를 받지 못했다.

이전상장·재상장을 제외하고 상장 심사를 받는 99곳 중 22%가량이 정해진 심사 기간을 연장한 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을 비교했을 때 약 16.2%가 심사 결과를 제때 받아보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전년 대비 크게 늘어난 수치는 아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지난해와는 달리 금리 인상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어 상장 심사를 이유로 예상한 시기에 공모를 진행하지 못하면 IPO 추진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초 예상한 기간에 공모 절차를 진행하지 못할 시, 미리 정해둔 공모 자금 규모를 채울 만큼의 투자 수요를 확보하기 어려워져 공모가나 공모 규모를 낮추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올해처럼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을 때는 빅딜의 경우 조금만 일정이 늘어져도 기관의 자금 조달 문제로 투자 수요를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투자 수요 확보를 위해 기업 설명회 등을 통해 기관과 네트워크를 다져둬도 예측했던 시점에 상장하지 못하면 기관의 수요를 예상치만큼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기업의 실적 변동성이 확대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제조기업의 경우 엔데믹과 함께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져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린 상황에 영향을 받아 올해 실적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플랫폼 사업을 영위하는 IT업계 역시 높아진 임금 비용과 광고 시장의 경기 악화로 국내 대표 기업들 역시 지난해 대비 성장률이 크게 낮아졌다.

증시 입성에 앞서 기업의 영업 안정성을 평가하는 거래소의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실적의 추이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올해 초 상장 심사위원회가 2개월가량 중단된 것 역시 기업의 연간 실적을 담은 감사 보고서를 본 뒤 상장 적격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예상보다 실적이 꺾인 기업들이 꽤 많아졌다"며 "심사 과정에서는 실적의 하향 조정 원인이 대외 경기 상황 때문인지 성장성이 훼손된 것인지 들여다봐야 해서 올해는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심사 중인 기업들 역시 주식 시장이 위축되자 비교그룹의 주가 추이를 살피며 상장 심사 기간을 넉넉히 가져가고 있다.

거래소가 요구한 보완 자료를 예년과 달리 빠르게 제출하지 않고, 증시 반등 여부를 살피며 심사 통과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규정상 상장 심사를 통과한 IPO 기업은 예심 승인이 결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증시 입성을 마쳐야 하는데, 자칫 이 기간에 주식 시장 위축이 심화돼 공모 진행이 어려워지면 다시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앞둔 쏘카 역시 지난 4월 초 심사 승인을 받았으나, 비교 기업인 해외 모빌리티 플랫폼의 주가가 하락하자 당초 예상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을 염려해 상장 시기를 8월 이후로 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 공모 철회를 결정한 현대오일뱅크의 경우에도 의도적으로 형식적인 서류 제출 시기를 늦추며 비교그룹인 에쓰오일의 주가 추이를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증시 위축으로 기업들이 빠르게 IPO를 진행해야 할 의지가 확연히 떨어진 상황"이라며 "거래소가 요구한 보완자료 제출 시기가 늦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사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 시장 반등 상황을 보고 공모를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ge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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