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달러 환율 동향






(서울=연합인포맥스) 영국은 19세기를 대표한 금융 제국이다. 당시 영국은 파운드화를 금에 연계하는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세계 각국은 교역 시 파운드화를 결제 용도, 즉 기축통화로 사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발생한 막대한 전쟁 부담으로 영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했지만, 아직도 파운드화는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주 초 외환시장에선 파운드화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관측됐다. 노동절로 뉴욕시장이 열리지 않았던 지난 5일 파운드-달러 환율이 전장 대비 0.60%가량 낮은 1.14420달러까지 밀린 것이다. 이는 팬데믹 충격이 있었던 2020년 3월 20일의 1.14096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당시를 제외하면 1985년 이후 37년 만의 최저치다.

이렇게 되자 시장에서는 머지않아 파운드화의 가치가 달러화와 동등한 수준(패리티)까지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국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마크 다우딩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이 내년 파운드-달러 패리티 하회 관측을 내놨다. 파운드-달러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직전 1.05달러까지 떨어지는 와중에도 1달러 선은 지키는 등 패리티 수준 아래로 내려선 적은 없다.

파운드화 가치 급락은 최근 유로화나 엔화 약세를 야기한 글로벌 달러 강세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긴축의 여파로 달러화가 유로화와 엔화 등 다른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유로-달러 환율은 7월 12일 2002년 12월 이후 처음 패리티를 기록한 이래 해당 레벨 부근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고, 달러-엔은 최근 143엔선 위로 고점을 높였다(엔화 가치 하락).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물가 상승 압력이 전반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천연가스 등 자원을 무기화하면서 영국 내 에너지 가격이 급등,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영국 경제의 체질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영국의 내년 인플레 전망치를 22%로 제시하면서 경제 역성장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이런 가운데 40대 여성 보수당 대표 리즈 트러스가 지난 6일 영국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집권당 당 대표가 총리직을 맡는다. 이로써 트러스 총리는 마거릿 대처, 테리사 메이에 이어 세 번째 여성 총리이자, 데이비드 캐머런 이후 첫 40대 총리가 됐다.

트러스 시대의 막은 올랐지만,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나라를 이끄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영국의 1분기 경상수지는 517억 파운드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예상치인 398억 파운드 적자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파운드-달러는 올해 들어 15% 하락했다. 파운드화 약세가 지속되면 수입 물가가 더 뛰면서 인플레가 심화하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트러스 총리는 보수당의 상징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어려서부터 추앙했으며 그의 복장과 포즈까지 따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트러스가 '철의 여인 스타일을 훔쳐 정치적 입지를 넓힌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리틀 대처', '제2의 대처'로 불리는 배경에는 이런 외적인 측면 외에 대처식 리더십의 부활을 열망하는 영국인들의 심리도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영국에선 재정 적자가 크게 불어났고, 잦은 파업으로 사회가 멈추기 일쑤였다. 소위 '영국병(British Disease)'이라고 불리는 사회 현상이 만연해 있었다. 1979년 취임한 대처 총리는 이를 치유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통화 안정 조치로 인플레를 완화하고, 재정 지출을 줄였다. 이것이 트러스 총재의 롤 모델이라는 의미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다만,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으로 요약되는 트러스 총리의 경제 구상, 이른바 '트러소노믹스'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는 "경제 불평등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펼치겠다"며 법인세율 인상 철회와 환경부담금 면제 등 강도 높은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감세 정책은 경기 부양에 효과적이지만, 나랏빚이 늘고 인플레를 자극할 수 있다. 도이체방크의 시레야스 고팔 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영국이 공격적인 재정 지출과 심각한 에너지 충격, 그리고 파운드화 가치 하락이 겹치면서 궁극적으로 70년대 중반처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놨다. 제2의 대처를 자처하는 트러스 총리가 이 모든 난관을 뚫고 영국 경제와 파운드화 가치의 재건에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h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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