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때 국내에 '소확행(小確幸)'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 단어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칭으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와 만든 신조어로 알려져 있다. 하루키는 자신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행복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에 비유했다.

이번 주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작지만, 주목할만한 변화' 몇 가지가 관측됐다. 과열된 미국 내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이 식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지표가 발표되고,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수장은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에 힘을 싣는 발언을 내놨다. 아울러 중국에선 그간 엄격하게 유지돼 온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완화 조짐을 알리는 신호가 나왔다. 잠재 파급력을 고려할 때 하나하나 무시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현지 시각으로 30일 발표된 ADP 전미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11월 민간 부문 고용은 12만7천 명 증가했다. 이는 전월 증가분인 23만9천 명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으로, 2020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또 미국 노동부 JOLTs(구인·이직 보고서)에 따르면 10월 채용공고는 1천33만4천 건으로, 전월 대비 35만3천 건 줄었다. 이런 흐름이 주말(2일)로 예정된 11월 비농업 부문 고용 보고서 발표까지 이어지면 연준의 광폭 금리 인상 행보를 제어할 명분은 더 강해질 전망이다.

연준이 주목하는 물가 지표가 예상치에 부합하는 수준의 증가세를 보이면서 인플레이션이 꺾이고 있는 점도 확인됐다. 미국 상무부는 1일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10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전달 기록한 5.2% 상승보다 0.2%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인 5.0%에 부합한다. 이 수치는 지난 2월 5.4%까지 상승하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30일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이르면 12월 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그 시점은 이르면 12월 회의가 될 수 있다"며 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4연속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한 연준이 12월에 인상 폭을 줄일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시장에서 거의 확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연준 수장이 이를 공식화한 점은 의미가 있다는 게 시장 참가자들의 진단이다.

파월 의장의 발언 직후 뉴욕증시는 큰 폭 상승했고, 2년물과 10년물 국채 금리는 급락했다. 달러화 역시 엔화와 유로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약세를 나타냈다. 파월 의장은 다만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끝은 아직 멀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금리가 계속 상승해 당분간 억제적인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그는 "일부 진전에도 물가 안정을 회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며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한동안 제약적인 수준의 정책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는 조기에 완화 정책을 하는 것을 강하게 경고한다"며 "임무를 완료할 때까지 경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의 방역을 담당하는 쑨춘란 부총리는 30일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좌담회에서 코로나19 최신 변이의 특성에 맞춘 방역 정책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쑨 부총리는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병원성 약화, 백신 접종 확대, 예방 통제 경험 축적에 따라 전염병 예방 및 통제는 새로운 정세와 임무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언급은 중국 지도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부터의 출구를 준비하고 있는 신호로 해석됐다.

실제로 쑨 부총리는 회의 후 성명에서 제로 코로나를 의미하는 '다이내믹 코비드 제로'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다른 관계자들도 이날 브리핑에서는 이전과 달리 관련 용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지난 주말 전국 여러 도시에서 고강도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이른바 '백지 시위'가 발생한 이후 베이징과 광저우, 충칭 등 중국의 대도시들이 속속 방역 완화 조처를 한 점 역시 이목을 끌고 있다.

다만 아직 이들 재료를 거대한 변화를 알리는 서막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먼저 미국 주요 기술기업 등이 11월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지만, 이것이 월초 측정된 수치를 기반으로 하는 비농업 부문 고용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지만, 금리 인상 자체는 한동안 계속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빅스텝 금리 인상 행보를 비둘기파적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방역 당국의 최근 행보를 기반으로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완전히 이탈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시장에서 관측되는 작은 변화들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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