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발(發) 외환 위기에 빠졌을 때 필자는 초년병 기자였다. 그때 담당했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기업의 부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은행 마감 시간 오후 4시 30분에 맞춰 여신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기업의 대출 상환 여부를 확인하고 선배에게 보고하는 일이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됐다. 당시 4시30분부터 5시까지는 'OO 기업 1차부도' 뉴스가 줄줄이 나오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덩치가 큰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기업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부도처리됐던 시절이었다. 당시 금융시장에는 'A기업 부도설', 'B기업 자금악화설' 등 지라시가 돌아다니고, 실제 금융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부도보다 더 힘든 건 부도 루머였다. 멀쩡한 회사가 부도설에 연루돼 실제로 자금을 못 막는 경우도 많았다. 소문이 나는 순간 모든 금융회사들로부터 자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장부상으로는 흑자지만 자금 미스매칭(만기불일치) 때문에 부도처리되는 이른바 흑자부도를 내는 억울한 사례도 발생했다.

뜬금없이 IMF 시절을 떠올린 건 최근 황당한 가짜 정보가 시장을 왜곡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잘못된 정보가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며 빛의 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에 가짜뉴스의 폐해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의 혼란, 기업의 피해, 억울한 사례 등이 훨씬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다.


저축은행 부동사 PF 루머 확산


토스뱅크의 유동성 위기설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와 관련한 허위 정보 유통은 SNS를 타고 도는 루머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다. 지난 12일 'PF에서 1조원대 결손 발생, 지급정지 예정, 잔액 모두 인출 요망'이라는 지라시가 돌면서 대형 저축은행 2곳이 거론됐고, 지난달 토스은행은 선이자 예금을 출시했는데 이를 두고 유동성 위기 루머가 SNS를 타고 확산되며 곤욕을 치렀다.

유튜브에도 루머인지 뉴스인지 헷갈리는 가짜뉴스 헤드라인이 난무한다. "지금 사세요", "놓치면 후회합니다", "이제 곧 망합니다"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썸네일로 독자를 유혹하지만, 검증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방송이 허다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작 마실 수 있는 정수(淨水)를 찾는 데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SNS를 비롯한 각종 플랫폼에는 마실 수 없고 마셔도 독만 되는 흙탕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이 활성화되고 챗GPT 등 성능이 강화된 툴이 나올수록, 플랫폼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금융시장의 교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팩트와 거짓을 가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정보의 유통속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서 봤듯이 스마트폰 뱅킹으로 은행이 망하는 건 한순간이다. 문명의 발전, 과학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세상을 열게 했지만 오히려 팩트를 따지고 루머를 구별하는 능력이 더 필요해진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루머를 걸러내는 시장의 자정(自淨)능력만 믿고 기다릴 순 없다.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감독 당국의 대응, 예방책 마련 등 다각도의 방안 마련이 필요한 것 같다.(편집해설위원실장)

jang73@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2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