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0여년 전쯤부터 우리 증시에서 디커플링(de-coupling)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통상 같은 쪽으로 움직이던 미국 주식시장과 우리 주식시장의 방향성이 엇갈릴 때 주로 썼던 말이다. 미국 증시가 하락해도 우리 증시는 나름의 선전을 할 때 동조화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회자됐고 그만큼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외교가에서는 디커플링이 다른 의미로 통한다. 주요 교역에서 중국을 배제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첨단 반도체를 중국에 팔지 못하게 막는다거나 중국산 배터리를 쓸 경우 그 전기차는 미국에서 보조금 혜택을 박탈하는 것이 디커플링의 예다. 이제까지 미국 주도로 진행된 대중국 전략은 디커플링이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만들어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중국에 대해선 철저하게 선을 그은 정책이 디커플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전면적인 공급망 분리가 외교ㆍ경제 현실상 부담이 크니 좀 더 수위를 조절하자는 게 디리스킹의 정의다. 미국에 동조하면서도 중국에 마냥 등을 돌릴 수 없는 유럽 국가들을 의식해 새롭게 정립한 개념이다.


시진핑과 악수하는 토니 블링컨 美 국무장관


디리스킹이 화두가 되면서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세계정세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만났다. 악화일로로 치닫던 미·중 관계가 다소나마 개선될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선 디리스킹을 대중국 정책 방향으로 선언했다. 이제 중국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보다는 일정 선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과 본격적인 화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의 전략적 후퇴 이면엔 미·중 관계를 좀 더 세련되게 관리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만을 놓고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중 관계가 최악의 단계에 들어서지 않도록 안전망을 설치했다는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미국의 정책변화는 세계 경제에도 다양한 파생변수가 될 수 있다.


달러-원(붉은선)과 달러-위안(푸른선) 환율 추이


미국은 최근 모디 인도 총리를 초청해 국빈으로 극진한 환대를 했다. 중국의 대안으로 떠오를 인도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공을 들이는 한편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유럽연합(EU)은 새로운 경제 안보 전략을 발표했다. 양자기술과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민감한 기술에 대해 해외투자를 규제하는 것인데, 사실상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구상 중인 신 수출통제체제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정세가 급변하는 지금, 국익의 키워드는 안보와 경제다.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분위기가 변화할 때 선진국들은 그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은 나름대로 자신의 공급망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대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안보와 경제 이익을 달성해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변화하는 정세에 맞게 생존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10년 후 우리의 미래 경제의 토대가 탄탄하게 마련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베트남에서 얻은 정상회담 경제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베트남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우리 입장에서 가장 협력해야 할 1호 국가다.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그룹들이 이미 진출해 있고, 희토류를 비롯한 자원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미·중 갈등의 시기에 한국과 베트남은 협력의 폭을 더 넓혀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베트남은 17건의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다.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미국이 공을 들이는 인도,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 등 인도·태평양 쪽으로 더 보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편집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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