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화폐전쟁(Currency War)은 오랜 시간 국제금융시장에서 논란의 주제였다. 화폐전쟁은 수출 경쟁력을 얻기 위해 자기 나라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무역에서 이득을 보는 것을 말한다. 환율전쟁으로도 불리는 이 총성없는 경쟁은 무역을 통해 국부를 쌓아야 경제력이 생기고 그것이 곧 국방력과 외교력으로 연결되기에 전쟁이라는 용어가 붙었을 것이다.

요즘은 지정학적 이슈와 맞물려 화폐전쟁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달러 패권과 위안화 패권으로 질서 재편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 보폭을 넓히기 시작한 중국의 행보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17일 브라질과 무역거래에서 위안화와 헤알화를 쓰기로 합의했다. 브라질의 최대 무역상대국은 중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아르헨티나 역시 이번 달부터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 대금을 위안화로 지급하기로 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교역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석유를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 통신협정)망에서 배제된 러시아에 중국이 손을 내민 것이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구애를 펼치고 있다. 사우디에서 수입하는 석유를 위안화로 결제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중국과 사우디의 은행간 협력을 강화하고, 기업간 지분교류 등을 강화하고 있다.


달러인덱스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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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이 외교, 군사, 경제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한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앞마당인 대만을 비롯해 필리핀과 동남아시아 등 태평양 인접 국가를 우군으로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가운데 대만과 필리핀 등으로 이어진 라인을 만들어 중국의 해상 진출 통로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전기차와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미국의 배후인 남미 국가와의 경제교류를 강화하면서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와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사우디의 페트로 달러(원유 결제는 달러로만 하는 것) 기조에 변화가 올지도 주목된다. 이른바 중국의 위안화 굴기가 비로소 달러 패권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중국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금융시장의 개방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위안화는 아직 국제사회에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파운드를 밀어내고 세계 제일의 통화가 된 달러의 위세는 아직도 견고하다. 위안화가 이에 맞설 힘은 아직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단시일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중국의 달러 패권 도전에서 파생되는 여러 요소들은 앞으로 시장 불안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가진 막대한 미국 국채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의 문제 등이 시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경우에 따라선 우리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대만 TSMC의 주가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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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시점에 대만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워런 버핏의 행보는 투자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버핏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 지분을 작년에 40억달러(5조3천억원) 이상 사들였으나 3개월 만에 거의 대부분을 매각했다. 그 대신 버핏은 일본의 5개 종합상사 지분을 사들였다. 세간의 많은 관심이 집중됐던 이 이슈에 대해 버핏은 지난 주말 있었던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TSMC는 세계에서 잘 관리된 중요한 회사이지만, 지정학적 위치를 좋아하지 않는다(I don't like its location)"고 했다. 대만보다 일본에 투자할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지정학 위험을 감지한 버핏의 리스크 관리는 시장에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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