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연준 의장도 종종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다. 그러나 연준은 한 세기 전만 해도 수많은 연방기구 중에서도 형편없이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재무장관이 당연직 연준 의장이었고, 연준위원들은 재무부 건물에서 식객 취급을 받으며 근무했을 정도였다.
대공황 때까지 이어진 이러한 연준의 지배구조에 칼을 댄 사람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1935년 행정부 각료들을 배제하고, 민간인 신분인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참여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로 하여금 금리를 결정하도록 했다. 당시 선임된 마리너 에클스 의장은 뉴딜정책 입안에 깊이 관여하는 등 루스벨트의 신임을 얻으면서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연준 본부 건물(에클스 빌딩)도 이 무렵에 지어졌다.
1951년 재무부와 연준은 중앙은행 독립성 확보의 역사적인 전환점이라 평가받는 '재무부-연준 합의(Treasury-Fed Accord)'를 체결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무부와 연준은 전쟁 채권의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는데, 전후 인플레 압박이 커지자 금리를 인상하고자 한 연준과 부채상환비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한 재무부 간 갈등이 고조됐다. 한술 더 떠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은 연준에 금리 정책을 변경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인위적 저금리 때문에 국채 발행이 차질을 빚으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재무부는 '연준의 미온적인 협조', 연준은 '(재무)장관의 비정상적인 지시' 때문에 이런 상황이 연출됐다고 서로 맹비난했다. 트루먼은 대내외 정치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불거진 이런 소동이 반갑지 않았고, 존 스나이더 당시 재무장관에게 조속한 사태 수습을 명령했다. 결국 스나이더는 연준을 찾아가서 7인의 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무부-연준 합의'에 서명했다. 앞으로는 연준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항복 선언이었다.(챗GPT 등 AI툴, 한국은행 자료 활용 사례 정리)
하지만 연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2년 재선을 앞두고 당시 연준 의장인 아서 번스를 통해 비공식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했고, 이는 실행에 옮겨졌다. 반면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은 집권 공화당 내 비판 압력에도 인플레 억제를 위한 과감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강단을 보이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입증해 냈다.
최근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2017~2021년) 때 관측됐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직접 지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파월 의장의 금리정책과 관련해 불만을 표시했고 그를 연준 의장에 지명한 것을 후회한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파월 의장이 이에 맞서 "정책 결정은 정치적 압력과 무관하다"고 대응했으나 당시 상황은 통화정책 중립성에 대한 여러 논쟁을 촉발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47대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가자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나온다. '연준이 경제예측 모델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들이 연준 지도부 물갈이를 준비 중이다' 등의 관측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초기 조치들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이민자 대량 추방 명령과 관세 부과 조치 가능성은 인플레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경제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다만 그가 추진할 실제 정책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인만큼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연준이 설정해야 할 정책 경로를 알려줄 예측 모델을 만드는 것이 더 복잡해진 셈이다. (2025년 1월 21일 오전 9시 4분 송고된 '연준, 돌아온 트럼프에 '딜레마'…"예측 모델 세우기 어려워"' 제하 기사 참조)
연준 수뇌부 교체론은 마이클 바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이 사임하면서 그의 후임자를 논의하는 것과 함께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파월 의장의 후임자 명단도 작성하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만 파월 의장이 정책 일관성보다는 제반 환경 변화에 따라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조정한 것으로 유명한만큼 당장 교체될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2.0 체제에서도 연준 의장이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란 공식이 성립할지 지켜봐야 할 때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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