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편법 상속, 소액주주나 채권자가 아닌 대주주의 이해에 따라 계열사간 부의 이전이 일어나는 굴파기(Tunneling)와 계열사 지원(Propping), 대주주 부의 증대를 위한 편취(Expropriation) 동기가 커질 수밖에 없다. 투명한 사회로 가기 위한 다양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는데, 숙제를 끝내지 못한 그룹에서는 다가올 변화 이전에 굴파기와 편취가 극대화될 가능성도 있다"

상법 개정이 무르익고 있는 2025년, 지금 어딘가에서 나오고 있을 법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4년 전, 2011년 11월28일 동양증권 채권리서치팀이 낸 '2012한국기업의 지배구조'의 한 부분이다. 터널링을 굳이 굴파기로 풀어쓴 점, 지금은 사라진 기업과 바뀌기 전 사명에서 꽤 오래전 자료라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지, 지금 읽어봐도 흐름에 맞다.

책 한 권에 가까운 이 보고서는 지금은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강성부 당시 동양증권 채권 리서치 헤드 주도로 만들어졌다. 강 헤드는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재벌 기업을 향해 외쳤다.

이 외침은 당시 재벌 기업과 정부, 시장을 흔들지는 못했지만 발간되자마자 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552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국내 80개 그룹의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하루에도 쏟아지는 수많은 보고서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강성부 헤드를 KGCI를 이끄는 강성부 회장으로 만들었다.

강성부는 1세대 크레딧 애널리스트다. 2001년 대우증권이 업계 최고를 달릴 때, 경쟁률을 뚫고 애널리스트가 됐다. 주식투자자를 위한 시장과 기업분석이 리서치의 거의 전부였던 때, 그에게는 채권 분석이 맡겨졌다. 크레딧을 분석하면서 기업의 부도율을 계산하는 게 주 업무였다. 개인 채권투자자가 거의 없던 시절이고, 크레딧 분석은 신용평가사가 장악하던 때였다.

그룹 신용등급에 따라 기업의 등급 역시 좌우된다는 점에 그는 주목했다. '그럼 그룹을 뜯어봐야 한다, 촘촘히 얽혀있는 그룹 지배구조를 파헤쳐봐야 한다'는데 이르렀다. 복잡한 지분 관계를 추적해 그룹별 지배구조도를 그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종금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채권 소매영업에 적극적이었던 동양종금증권으로의 이직이 커리어에 큰 원동력이 됐다. 회사채를 리테일에 판매하는 만큼 심사는 중요했고, 더 치열하게 분석해야 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묶어 2005년 첫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를 냈다. 지배구조 정도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사업보고서 등을 뒤져야 하는 복잡한 일이었다.

그 정점은 2012한국기업의 지배구조 보고서에서 찍는다. 핵심은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당시 이슈를 다루는 전반부가 아닌 국내 80개 그룹의 지분구조, 후계 구도 등을 수록한 후반부에 있었다. 일반인이 볼 수 있는 내용은 전반부 중 100쪽 분량뿐이었고, 나머지는 기관투자자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됐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이런 문제는 사실 '금기어'나 다름없었다.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후계구도를 짜기 위한 재벌 기업들의 쪼개고 합치는 변화 과정을 읽고, 세상에 알렸던 그는 신한투자증권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15년간의 애널리스트 생활을 마무리한다.

기업 신용, 재무, 지배구조 등에 누구보다 밝았던 그는 전공을 살려 LK파트너스 대표이사로 이동한다. 상속과 가업 승계, 지배구조 변화, 사업구조 개편 연계 투자에 특화된 사모투자회사 대표로 감각을 익혔고 소위 여럿 쩐주도 알게 된다.

2018년에는 드디어 '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 테마로 KCGI를 차린다. 창립한지 얼마 안 돼 베팅한 한진칼 투자로 명분과 실리를 얻게 된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승계,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3세, 3세로 내려오면서 희석된 지분율과 자녀들의 비슷한 지분 규모 등 행동주의 펀드가 파고들 틈은 많았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5% 이상 지분 공시를 피했던 이들과 달리 KCGI는 지분 9%가량을 사들이고 움직였다. 사외이사 한 명 넣지 못한 실패한 주주행동이었지만, 보유 지분을 호반건설에 넘기면서 2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후 여러 행동주의 활동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KCGI는 2022년 메리츠자산운용을, 2025년 한양증권을 인수한다. 자산운용사에 이어 증권사까지 계열에 편입하며 강성부의 종합금융사 제국을 위한 기반을 창업 7년 만에 다지게 됐다. 여의도 증권가는 주목한다. 자본시장이 성숙하면서 개인 맨파워보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다 보니 한동안 나타나지 않던 스타, 이름이 곧 브랜드인 그를.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제 한국도 빨리 갈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함께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던 2011년 11월 28일의 강성부. 한진칼 사태처럼 사실은 혼자 가기 위한 목적을 주주행동으로 포장했다는 시선도 공존하는 때, 이제부터는 주주와 기업과 함께 가는 진짜 행동주의 트랙레코드를 보여줘야 한다.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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