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그리스어 'Traumat'에서 나온 상처라는 뜻을 가진 '트라우마'. 언젠가부터 우리 삶으로 들어온 트라우마는 금융권의 관행처럼 때론 변명거리로 악용된다. 트라우마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뒤에 숨기 좋은 것도 사실이다. 상처가 쌓여서 공포가 됐다고 말하는 트라우마의 진화 버전 '포비아'도 비슷하다.
증권가에 눈에 띄는 상품이 등장했다. 카타르국립은행(QNB) 예금 담보 자산담보기업어음(ABCP). 반가움도 잠시, 머니마켓펀드(MMF) 대규모 환매 사태를 촉발했던 그 상품이라는 기억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멀다면 먼 카타르의 이 상품은 2018년 8월 터키발 금융 불안으로 관련 MMF에서 18조5천억원이 8일 만에 유출되며 펀드런을 일으켰던 바로 그 자산이다. 당시 일부 운용사들은 QNB ABCP를 편입한 MMF의 환매를 중단했고, 이 여파로 카드채 등 크레딧 시장이 급랭했다. 금융감독원은 이후 MMF 운용사 15곳을 전방위 검사하고 제재를 논의하기도 했다.
2025년 재등장한 카타르 예담 ABCP는 매력적인 금리를 제공한다. 3개월 만기에 2.9% 수준으로 국내 동일 신용등급보다 30bp가량 금리가 높다. 스프레드가 무려 30bp.
"신용등급 대비 높은 수익률을 준다면 그만큼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라는 지적이 일단 와닿는다. '그렇게 좋으면 왜 너에게 추천했겠느냐'는 우리네 부모님 말씀처럼.
되돌아가 보자. 그날의 진짜를.
지난 2018년 당시 터키 지점이 있는 카타르에 대해 리라화 가치 하락으로 QNB 신용등급 하락 우려가 있다는 증권사 리포트가 나왔다. 쉽게 풀어쓰면, 신한은행 베트남에 지점이 있는데, 동화 가치가 하락한다고 해서 신한은행의 신용등급이 하락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신한은행을 떠올린다면 누구도 신용등급 하락을 생각하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센 펀드런이 일어났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이스라엘-이란 전쟁을 포함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 모든 내용은 크레딧 이슈와 사실상 무관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카타르는 서울과 몽골 울란바토르 정도의 거리다.
또, QNB 정기예금에 가입한 곳은 싱가포르 지점, 그것도 달러 정기예금이었다. 정기예금은 은행이 망하더라도 담보채권, 월급 다음으로 우변변제권이 있는 자산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자산운용사 운용역과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결과는 펀드런이었다.
시간이 흘러 국내에 다시 등장한 카타르 예담 ABCP에는 '포비아 스프레드'가 담겼다. 모두가 기피할 때, 이를 담은 머니마켓ETF가 나타났다. ETF는 MMF와 달리 자산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일각의 시선에 "4개월 만기 정기예금이 있는데, MMF 또는 초단기형 머니마켓 ETF가 아니면 어느 유형에서 이 상품을 선호하고 어디에 어울릴까"라고 반문한다.
펀드매니저와 자산운용사가 합리적인 판단, 투자자를 위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포기하고, 결국은 투자자에게 돌아갈 높은 기회비용을 치르더라도 집단적으로 투자를 기피하는 모습이 겹친다. 본인 임기 동안 아무 일 없길 바라는 헤드, 학습하지 않는 수익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자산운용사는 결국 실질적인 손해를 낳는다. 어찌 보면 'K금융의 민낯'의 한 부분이다.
사실, 2018년 이슈 이전만 해도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글로벌 은행의 상품을 기초로 하는 금융상품이 많았다. 그러나 자리보전, 누구도 리스크를 지지 않겠다는 분위기 속에 사라져갔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희망을 본 사람도 있었다.
2020년 원발행자 규정이 도입되고 유예기간도 생겼다. 당시 한국자산평가는 국내 최초로 유동화자산의 원발행자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처음이었기에 질은 낮았고 실질을 반영하지 못했다. 그중 한 자산운용사가 적극적으로 설계, 데이터 오류를 맞춰가며 수정했고 시스템으로 녹여냈다. 이후 그 자산운용사는 기관투자자로부터 사모펀드를 가장 많이 집행 받았다. 현재 이를 활용한 운용과 컴플라이언스 관리는 현재 대부분 자산운용사에 도입됐다. 카타르 예담 ABCP를 담은 미래에셋 머니마켓액티브 ETF 운용역인 김동명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ETF운용본부장 얘기다.
김 본부장은 작년 5월에 기업은행이 국내 최초로 발행한 KOFR-FRN도 운용했다. 최초여서 낯선 이 상품에 대해 미국 SOFR-FRN을 학습하면서 가능성과 문제점을 파악했다. 당시 최초로 투자한다는 점을 어필하며 시장 스프레드보다 파격적인 조건을 요구했고, 발행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1년이 지난 지금 특수은행에서 시중은행 그리고 여전사까지 KOFR-FRN 발행사는 확대되고 있다.
채권은 듀레이션, 커브 전략과 더불어 크레딧 전략이 중요하다. 크레딧 전략은 불확실성을 줄이고 엣지를 찾아 초과 성과를 목표로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 ETF는 과거 공모펀드 전성기 시절의 인덱스 펀드와 어떻게 보면 같다. ETF 운용역은 펀드매니저라기보다는 시류에 따라 잘 팔리고, AUM을 키울 수 있는 상품에 뛰어들면 되는 마켓터에 가까울 수 있다.
이쯤에서 진짜 액티브 ETF를 생각해보게 된다. 주식형보다 더 운신의 폭이 좁은 채권형, 그것도 단기에서 '포비아 스프레드'에 베팅한 액티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남들과 다른 것을 하라"고 했던 그 마인드가 미래에셋운용이었기에 발휘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가운 상품이 더 반갑도록, 오명을 썼던 상품이 부디 다음번에 나타났을 때 색안경에 가리지 않기를 희망해본다.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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