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건전한 조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급격한 조정을 만들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향한 서울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갑작스러운 그의 '방향 전환(even the change of direction)' 발언에 서울 채권시장의 충격은 상당했다.

국고채 금리가 다시 연고점을 경신하면서 주춤했던 시장 약세 흐름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분간 서울 채권시장의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다.

이에 서울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한은의 무게와 책임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건전한 조정이라더니…" 양치기 소년된 한은

13일 연합인포맥스 '종합화면'(화면번호 5000)에 따르면 전일 국고채 3년물 최종호가 수익률은 전장 대비 9.2bp 오른 2.923%를 기록했다.

10년물 금리는 8.1bp 상승한 3.282%였다.

국고채 3년과 10년물 금리가 현 수준까지 치솟은 건 각각 지난해 11월과 7월 이후 처음이다.

 

국고채 3년·10년물 금리 추이
출처 : 연합인포맥스 '종합화면'(화면번호 5000)

 

이창용 총재의 블룸버그TV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시장금리가 급등한 여파다.

장중 10년 국채선물은 원빅 이상 하락하는 등 시장은 속수무책 밀렸다.

큰 충격을 준 건 '방향 전환(even the change of direction)'이라는 표현이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폭이나 시기 혹은 방향의 전환은 새로운 데이터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통화정책 방향의 전환으로 해석되면서 금리가 큰 폭으로 급등했다.

한은은 해당 발언이 금리 인상을 검토하는 게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폭등한 금리를 회복시키기엔 무리였다.

기획재정부도 "채권시장 불안심리가 과도하다"며 시장을 진정시키고자 했으나 서울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기대감은 크지 않은 분위기다.

당국의 진화는 급격한 약세를 소폭 되돌리는 수준이었다.

A 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기재부가 할 수 있는 건 긴급 바이백 밖에 없다"며 "이미 웬만한 기관이 다들 손절했을 시점에 작은 반창고를 붙여준 정도"라고 말했다.

통화정책 수장의 발언이 시장에 큰 충격을 주면서 이창용 총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안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은이 도리어 채권시장의 불안을 만들었다며 한은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B 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한은의 역할에는 금리나 환율 등에 대한 기대관리도 포함된다"며 "총재의 발언으로 금리가 폭등한 터라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금융 안정을 훼손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총재의 발언이 최근 한은이 보여온 행보와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에서 시장의 신뢰 또한 흔들리는 모습이다.

A 딜러는 "인하 사이클에 있다던 한은의 경로가 총재 발언에서 뒤바뀌면서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선 양치기 소년이 돼 버린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무책임한 발언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진 데다 그들의 말에 의해 채권시장이 움직이는 형국이라 예측 및 전망이 의미 없어진 상태"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은의 경우 외신을 통해 최근의 금리 상승이 건전한 조정이라는 시선을 드러내 채권시장 투자 심리 악화를 가속한 바 있다.

이어 이 총재의 발언이 시장에 더 큰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B 딜러는 "금리가 완만하게 올랐다면 건강한 기대의 조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총재의 발언은 급격한 조정을 만들었다"며 "국고채 3년물 금리가 두 달 만에 50bp 가까이 오른 환경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닌 듯하다"고 짚었다.

◇연말 수급 부담에 한은까지…시름 깊은 국내 기관

국고채 금리가 또다시 급등하면서 국내 기관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전일의 하락장에서 국내 기관들의 매수 여력이 다시 한번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중소형사의 경우 앞선 금리 급등 당시 운용 손실 한도에 다다른 곳들이 상당했지만 대형사는 상반기 수익으로 버티고 있던 실정이었다.

C 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상반기에 벌어놓은 게 많지 않던 하우스는 이미 손절 상태라 나올 물량이 없지만 대형사는 다르다"며 "상반기 수익으로 조금 더 버틸 순 있겠지만 금리가 여기서 더 밀리면 그들의 손절 움직임까지 더해져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충격은 시장에 온기가 감돌 듯한 기류 속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파장이 컸다.

서울 채권시장은 지난주까지 연일 연고점을 경신한 후 이번 주 들어 강세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크레디트 시장을 둘러싼 불안감이 이어지긴 했지만, 시중은행의 조단위 발행물이 소화되는 등 수급 불안이 다소 걷히는 듯한 상황이 엿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재의 발언이 찬물을 끼얹으면서 향후 시장 분위기를 가늠하기 쉽지 않아진 상태다.

B 딜러는 "이번 주 시장이 강해지고 크레디트 수요도 차츰 들어오면서 장이 좀 돌아서나 싶었다"며 "하지만 총재 발언발 급등 이후 매니지먼트 콜이 나오는 곳들도 좀 더 늘어날 수 있어 보여 당분간은 녹록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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