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달러-원 환율이 1,470원을 찍으며 고공행진 하는 모습에도 원화 저평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시장 일각에서는 7개월래 최고치로 오른 환율이 전고점을 찍으며 1,500원을 향하는 상황에서 당국이 환율 상승에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의아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환율 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럼에도 "변동성이 커졌을 때 개입할 의지가 있다"는 원칙은 재확인했다.

이같은 구두개입성 발언이 전해지면서 전날 환율 상승의 열기가 일부나마 꺾인 만큼 향후 개입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시장은 평가했다.

1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은 전날 한때 1,470원까지 올랐다. 이는 올해 4월 9일 1,487.6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잇단 매파적 금리 인하 속에 달러-원 환율은 지난 9월 중순 이후 급격하게 올랐다. 1,380원 수준에서 1,470원까지 무려 90원이 오른 것이다.

달러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선 모습에 동조했다.

다만 달러 인덱스가 같은 기간 96.2선에서 최근 99.5선으로 오름폭이 다소 완만했던 점을 고려하면 원화의 약세폭은 과격한 측면이 있다.

이 총재는 그동안 원화 가치를 짓눌렀던 가장 중대한 요인으로 꼽힌 한미 관세협상, 즉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 패키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확실성'이 여전히 상존해있다는 점을 원화 약세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전날 외신 인터뷰에서 원화가 3개월 사이 아시아 통화 가운데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묻는 말에 "지난 2~3개월 동안 환율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 너무 많았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AI) 관련 미국 주가 변동성이 우리 증시에 영향을 미친 것과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에 따른 지표 공백,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 불확실성, 일본의 새 내각과 엔화 약세, 그리고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의 미중, 한미 정상회담까지 모두 언급했다.

이 모든 복합 요인을 '안개(fog)'에 비유하며 "새로운 방향을 보기 위해서는 이 안개가 걷히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원화 절하가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보는지, 그게 아니라면 사실상 한국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 판단하기에는 매우 어렵다"고 저평가 진단에는 선을 그었다.

불확실성이 너무 많아서 판단이 쉽지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우리 시장이 그런 불확실성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환율 상승이 내국인의 해외투자 영향이 컸던 점을 고려하면 금융안정 측면에서 우려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거주자 포트폴리오의 과격한 움직임으로 환율의 변동성 자체가 커지고, 이것이 과도할 수 있어 지켜봐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시장의 과도한 반응, 거주자 포트폴리오가 환율 여건을 지배하는 상황 등은 이 총재가 경계심을 갖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앞서 이 총재가 한미 관세협상을 '굉장히 잘된 협상'이라고 평가해놓고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 것은 다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관세협상이 끝난 마당에 불확실성이 계속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1,450원까지 올랐던 부분은 대내외 요인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1,470원까지 더 오른 것은 다소 과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당국이 강도 높은 개입을 언제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라면서 "환율이 1,500원에 가까워진 만큼 개입의 명분은 쌓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10월말 한미 협상 타결 이후 불확실성은 줄었다"면서 "다만 팩트시트가 나오지 않는 부분에서 다른 이슈가 있는게 아닌가 시장이 우려하는 부분을 짚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증시 조정과 내국인 해외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 쏠림이 큰 것이 환율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급격하게 변동성이 커진 것은 맞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의 외환딜러는 "전날 총재 발언 이후 환율 상승세가 좀 진정되기는 했는데 이번 발언만 봐서는 개입하겠다는 건지 판단이 확실하지 않다"면서 "당국의 소극적 스탠스가 변동성에 일조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앞선 한미 환율합의 이후 오히려 외환당국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고환율이 계속되면 경제 펀더멘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당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아하다"고 덧붙였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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