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달러-원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할 때마다 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커진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1997년 외환위기 등 과거 위기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달라진 환율 지형과 수급 구조를 보면 같은 숫자라도 의미하는 바는 전과 다르다. 한국 순대외자산(NFA)은 작년 말 이후 1조달러를 넘어섰고, 해외투자는 연기금과 보험사, 기업, 가계 모두에서 구조적으로 늘었다. 자금이 국내로 되돌아오지 않는 흐름이 고착화되면서 환율이 예전보다 높은 지점에서 형성되는 것은 일종의 뉴노멀에 가깝다.

단순히 숫자만으로 위기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배경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가벼운 숫자는 결코 아니다. 고환율의 부담은 훨씬 더 구조적이며 그 영향은 경제 전반에 걸쳐 누적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입물가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원자재,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고 달러 결제가 절대적이다. 환율이 높아지면 수입물가는 즉각 상승하고, 이는 곧바로 생산자물가에 반영된다. 기업의 생산비가 오른 만큼 도소매 가격, 나아가 소비자물가까지 단계적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한국은행 분석에서도 달러-원 환율이 100원 오를 때 소비자물가가 약 0.15~0.2%포인트(p) 추가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고환율이 길어질수록 물가안정 경로가 흔들리는 이유다. 지난 10월 원화기준 수입물가는 환율 상승 여파에 전월대비 1.9% 올랐다. 이는 9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기업의 부담도 무겁다.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비중이 늘어나면서 수출기업이 고환율 혜택을 누리는 것이 과거에 비해 약해진 데 비해 수입기업의 부담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정유와 항공, 철강, 식품기업들이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업들은 연초 고공행진하던 달러-원 환율이 연말에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경영계획을 짰지만, 이런 전망이 완전히 빗나가면서 비상이 걸렸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과 고환율의 충격을 동시에 견뎌야 한다.

고환율은 통화정책에도 제약을 만든다. 물가가 안정돼도 환율이 불안정하고 높은 수준에 머문다면 한국은행은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도 금리 인하를 쉽게 단행하기가 어렵다. 수입물가 상승과 환율발 물가 압력을 고려할 때 정책 완화는 오히려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에도 금리 동결의 배경으로 수도권 부동산뿐 아니라 고환율이라는 금융안정 변수가 고려된 바 있다. 환율이 높게 유지된다면 통화정책의 대응 여력과 선택지를 줄이는 셈이어서 고환율의 부작용치고는 매우 뼈아프다.

1조달러를 돌파한 순대외금융자산은 외환 건전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만성적 원화 약세 요인이 되고 있다.

아울러 거주자의 해외투자 증가로 순대외자산의 구성이 은행이나 공적 기관에서 민간 중심으로 옮겨감에 따라 단기 외환시장 유동성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고 한국은행은 지적하기도 했다.

고환율과 자산 가격의 변동성은 원화 자산에 대한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국내 자산수익률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수급 불균형이 해소된다면 달러-원 환율이 1,400원 초반대, 혹은 1,300원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대규모 해외투자, 국내 자산 수익성 부진 등 수급 불균형을 고착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환율은 높은 수준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환율 1,500원이 위기라고 볼 숫자는 아닐지 몰라도 가볍게 넘길 숫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높은 환율은 경제나 기업, 정책, 자본시장에 부담을 누적시키며 이 부담이 쌓이면 환율 수준 자체가 새로운 제약이 된다. 환율 1,500원이 만들어낼 구조적 비용을 이해해야 대응이 가능하다. (경제부 정선미 기자)

고공행진 이어가는 환율...외환위기 넘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16일 명동거리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2025.11.16 dwise@yna.co.kr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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