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올들어 국내 금융사와 기업들이 잇따라 해외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발행하는 '한국물'에 그동안 신용등급 'AA'급 이상만 투자하던 보수적인 글로벌 투자자들의 '입질'이 계속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된 이후 한국 금융사와 기업들을 바라보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영향 때문이다.

상당한 유동성을 보유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물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자 국내 금융사와 기업들은 해외에서 매우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는데 성공하면서 금융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산업은행은 지난 달 16일 3년물과 5년물로 5억달러씩 총 10억달러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했는데, 투자자들의 면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간 수십억달러씩 글로벌본드를 발행해 왔지만 처음보는 투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정부가 운영하는 편드, 북유럽 국가와 독일에 국적을 둔 펀드 등 그동안 봐 오지 못했던 투자자들이 채권을 산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4일 "이들 펀드는 안정성을 매우 중시해 그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신용등급이 'AA'급 이상인 최우량물에 대한 투자만 하던 곳들이다"고 귀띔했다.

산은은 당시 매우 공격적인 프라이싱에 나섰음에도 투자자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통상 입찰에 들어가면서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던 이니셜가이던스(최초 제시금리)는 유통시장 금리에 10∼20bp 정도를 가산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지만, 산은은 오히려 낮게 제시했다.

매우 공격적이다 못해 모험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박이었다. 10억달러 발행에 207곳의 글로벌 투자기관이 몰렸고 수요만도 30억달러가 넘었다.

우량물에만 투자하는 중동계 자금만 3억달러 넘게 매수 주문이 들어왔고, 세계 최대 채권투자사인 핌코와 중국의 대형 은행들도 수억달러 어치의 주문을 냈다.

결국 발행금리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3년물은 미국 국채수익률(T)에 80bp, 5년물은 97.5bp가 가산된 수준으로 결정됐다.

5년물 가산금리가 100bp 이하에서 결정된 것은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우리나라 금융사로는 처음이다.

지난 달 30일 3년물로 5억달러의 해외채권을 발행한 하나은행도 달라진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성향에 놀랐다.

하나은행도 산은과 마찬가지로 매우 공격적인 프라이싱에 나섰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국책은행인 산은과는 처지가 달랐지만 그래도 한번 밀어 부치기로 했다.

이니셜가이던스는 'T+120bp'.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갔지만 예상만큼 '오더북'이 쌓이지 않았다. 하나은행은 더 한번 '베팅'에 나섰다. 미국 투자자들이 받쳐 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결과는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미국시장에서 우량물 투자 기관들이 대거 몰리면서 최종적으로 15억달러의 주문이 쌓였고, 결국 발행금리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5년6개월물로 3억5천만달러를 발행한 신한은행과 3년물로 3억달러를 발행한 국민은행 역시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발행금리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국제 금융시장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글로벌 채권투자자들은 한국물을 'BBB∼A'급 정도로만 인식해 왔고 투자자들도 제한돼 왔다"면서 "하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달라지더니 올들어서는 거의 'AA'급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근 핌코나 중국계 은행들은 일정 규모의 물량을 주지 않으면 사지 않겠다고 할 정도이고, 보수적인 투자자인 일본의 유초은행(우정국의 우편예금을 담당하는 은행)도 한국물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투자자들 사이의 한국물 인수 경쟁이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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