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석유 안 나면 석유수출 못 해? 자원 없으면 자원강국 안돼?"

지난해 수출 53조원, 16개국 24개 광구 자원개발 성과를 홍보하는 SK이노베이션의 광고 문구가 최근 눈길을 끈다.

공기업과 상사, 정유업체 등은 이명박 정부에서 해외 자원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각 자원 자급률도 크게 올랐다. 자원개발 관련 거래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수년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자원개발 성과가 웬일인지 지난해부터 주춤해졌다. 오히려 일부 공기업과 상사는 사업을 포기하거나 지분을 되팔고 나오기 시작했다.

관련업계와 IB 업계 관계자들은 17일 이에 대해 큰 수익을 기대할 자원개발처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정부 지원을 받는 중국과 일본 기업들이 자원개발 광구나 기업 몸값을 잔뜩 올려놓은데다 경쟁 입찰 시 자금력에서 밀려 이기기가 쉽지 않다.

반면, 자원개발 거래를 주도했던 한국석유공사 등 공기업은 증가한 차입금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개발 초기단계부터 참여해야 하는 데 큰 위험부담을 안아야 한다. 매장량을 잘못 판단했거나 뒤늦게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계약조건도 갈수록 나빠진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실제로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지난 4월 호주와 페루 등지 자원개발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삼성물산, LG상사, 대우인터내셔널 등 국내 대표 상사들도 자원사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석유, 천연가스 등 광업분야에 대한 해외 투자는 3억5천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4%나 감소했다.

인수하고 싶어도 다른 나라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 유렌코(Urenco)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 독일 전력회사 등은 3분의 1씩 지분을 나눠 가진 유렌코의 지분 매각에 나선다. 유렌코의 지분가치는 약 15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약, 한전이 일부 지분만 인수해도 원전 연료인 농축 우라늄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거액 인수에 따른 시너지를 누릴지 미지수다. 인수 의지와 자금이 있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시너지가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 없이 핵연료를 농축하거나 재처리하지 못한다. 원전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을 전량 수입하고 있다. 양국은 내년에 만료되는 협정 개정을 위해 협상을 하고 있으나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개정안에는 안정적인 원전 연료 공급도 포함됐다.

원자력협정이 개정돼야 유렌코 인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종합상사 관계자는 "중국, 일본과의 경쟁은 물론 각국에서 자원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갈수록 좋은 자원개발처가 줄고 있다"며 "전세계 리튬의 절반가량을 보유한 볼리비아가 해당 자원의 가치를 깨닫고 외국 기업과 자본의 광산 개발 참여를 막은 것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이 철저한 사전 조사를 해야겠지만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중요하고 금융지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일부 외국계 IB는 자원관련 전담팀을 꾸려 영업에 나설 정도였다"며 "그러나 그동안 양적인 성과에 너무 치우쳐 최근 자원개발 구조조정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리스크를 우려해 자원개발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이 정보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해 실패 확률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산업증권부 기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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