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은 도이치은행그룹 한국대표>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지난 2010년 '도이치 옵션 사태' 이후 쥐죽은 듯 잠잠하던 한국 도이치은행그룹이 최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AB인베브의 오비맥주 인수 딜을 비롯해 칼라일의 ADT캡스 인수, KB금융지주의 LIG손해보험 인수, SK하이닉스의 바이올린메모리 카드사업부 인수 , 모간스탠리프라이빗에쿼티(PE)의 현대차그룹 이노션 지분 인수 등 굵직한 국내외 M&A 딜 자문을 따내면서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서 골드만삭스와 JP모간 등 미국계 IB들에 밀려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던 도이치에 '일감'을 몰고 온 주인공은 안성은 도이치은행그룹 한국 대표다.

IB에만 20여년을 몸담으면서 쌓은 실력과 더불어 젠틀(gentle)한 성품으로 업계에 명성이 자자한 그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한국지점 대표로 있다가 지난해 7월 도이치은행그룹의 한국 대표로 옮겼다.

도이치은행그룹은 도이치은행 서울지점과 법인 형태로 있는 도이치자산운용, 도이치증권을 총괄한다.



◇ "IB 과거 영화 누리기 어렵다"

안성은 도이치은행그룹 한국대표는 22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IB업계가 보상(compensation) 측면에서 과거 영화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말부터 꺼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젊은 세대에 미안한 생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가 '과거 영광 회의론'을 꺼내든 것은 글로벌 시장과 아시아 시장, 한국 시장에서 모두 사업이 잘되는, 과거와 같은 삼박자를 이제는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웬만한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은 자체 M&A팀을 꾸리기 시작했고, 사모펀드(PEF)도 자체 역량을 동원해 딜을 진행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자문 수수료가 하향화되는 추세가 IB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안성은 대표는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 수수료가 하향화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글로벌 본사 입장에서 보면 한국 시장의 규모가 작아지는 것이고, 이는 자원(resource)의 지원이나 중요도 측면에서 좋은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업계의 수수료 제살 깎아먹기 경쟁은 단지 IB들의 수익성 악화 차원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국내 IB업계의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안 대표는 "일본만 하더라도 기업공개(IPO) 주관 수수료가 3~5%는 된다. 홈 마켓 규모가 크다 보니 일본 IB들이 여러 사업을 시도할 수가 있다"면서 "그에 비해 한국은 시장 사이즈는 작은데 너무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어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금융의 삼성전자? 금융업 본질 되새겨야"

최근에는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제조업에 치중된 국내 산업 구조를 금융으로도 확장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차원에서다.

안 대표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특성(intangible)'이 있는 금융 서비스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은 획기적인 상품 만들면 1~2년 만에 클 수 있겠지만 금융은 트랙 레코드와 신뢰가 중요하다"면서 "혜성처럼 나타난 금융회사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IB는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것인 만큼,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장 전체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이같은 장기적인 안목을 IB 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아직 태동 단계에 있는 PEF도 마찬가지로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토종 PEF인 보고펀드의 LG실트론 투자 실패에 따른 인수금융 디폴트 사례는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실패고, 보고펀드만의 이슈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국내 PEF 산업이 시작 단계에 있는 만큼 운용자(GP)나 투자자(LP)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GP 스스로 전문 경영 집단을 확보하는 등의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LP 역시 GP들의 운용 능력을 자금 투입의 최우선 고려 요소로 보고 보다 철저히 검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대표는 "국내 PEF 시장이 활성화하는 쪽으로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그걸 얼마나 빨리, 그리고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투자 성과에 조급해하지 말고 투자 기간과 회수 기간을 조금씩 늘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PE들은 M&A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윤활유 같은 존재다"면서 "일반 기업들이 할 수 없는 구조조정 등의 순기능을 PE들은 할 수 있어 시장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수익성과 딜 건수, 두 마리 토끼 잡을 것"

안 대표는 취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대형 M&A 딜 위주로 가져가던 지금까지의 전략에 변화를 줄 계획이다.

올 초에는 딜 플로우(deal flow)가 양호했지만 자칫 시장이 어떻게 형성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금까지는 수익성과 딜의 퀄리티에 중점을 뒀지만 향후에는 필요하다면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낮은 정부가 진행하는 블록딜에도 참여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다만 치열한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0bp 수준에서 수수료가 형성된 딜에 단순히 리그테이블을 위해 자원과 시간을 투입해가면서 참여하기보다는 선별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무엇보다 도이치가 잘 할 수 있는 딜에 뛰어들겠다고 강조했다.

도이치가 강점이 있는 FX나 헤지(hedge), 인수금융 등 뱅킹(banking) 서비스에 IB의 마켓 서비스를 잘 조합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이치가 테크(tech)와 기계·장비·소재, 자원, 금융 분야에 강점이 있어 관련 분야의 딜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주니어급 인력도 더 확충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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