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인재·고객·문화 등 '생태계 형성'에 영향
시대 흐름 반영, 최근 AI·자율주행·ESG 기업 증가

 

(실리콘밸리=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글로벌 테크산업의 중심지 실리콘밸리는 살인적인 물가로 악명 높은 곳이다. 집값과 생활비가 미국 내 최고(最高) 수준이고, 음식값에 세금과 팁 외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식당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방위적 인플레이션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요소다. 사무실 임대료·운영비부터 직원 임금, 각종 공과금 등 고정비가 치솟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처럼 규모가 작을수록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팬데믹 이후 실리콘밸리의 위상이 여전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1만개 이상의 크고 작은 기업이 모두 버틸 순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일상이 된 비대면 역시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견고함을 흔들 요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 오라클, 팔란티어 등 본사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 내 지도
[출처: 연합인포맥스]

 


그럼에도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혁신가들이 '가고 싶어 하고, 가야 하는 곳' 1순위라는 게 중론이다. 현지 시장 진출을 꿈꾸는 외국기업은 물론, 미국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로는 ▲투자 ▲인재 ▲고객(시장)이 꼽힌다. 기업 활동에 꼭 필요한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져 있다는 의미다. '차고 창업' 문화와 자유롭고 진보적인 분위기,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 역시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에서 근무하는 김욱진 차장은 지난달 28일 연합인포맥스와 만나 "스탠퍼드대로 상징되는 차고 창업문화가 이곳에서 시작됐다"며 "미국 내 전체 펀딩 금액의 40%가 실리콘밸리에 집중되는 등 투자를 받기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명 벤처캐피탈(VC) 대부분이 샌프란시스코 만안지역(Bay area)에 모여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위치한 이 무역관은 소프트웨어(SW), 콘텐츠 등 무형물 수출 진흥과 더불어 유관 스타트업의 현지 진출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현지를 잇는 '브릿지'인 셈이다. 무역관 내 IT지원센터는 사무실 제공 등 초기 정착과 비즈니스 개발(Develop)을 도와준다.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에서 근무하는 진재현 매니저와 김욱진 차장(오른쪽).
[출처: 연합인포맥스]

 


진재현 IT지원센터 매니저 역시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를 받는 등 펀더멘탈이 있어야 하는데 실리콘밸리에선 그게 잘 이뤄진다"며 "초기에 진입해서 볼륨이 커질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환경이 잘 마련돼 있다"고 부연했다.

문화적 배경도 한몫한다. 글로벌 빅테크인 애플과 구글, MS 등은 모두 차고에서 '첫걸음'을 뗐다. 이 같은 창업 문화는 전통적으로 도전과 혁신을 중시해온 스탠퍼드대·UC버클리와 맞닿아있다. 최고의 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뛰어난 인재에 풍부한 투자금,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더해져 실리콘밸리만의 생태계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잠재 고객 역시 이곳을 찾는다.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포토닉스 웨스트' 같은 주요 테크 컨퍼런스와 전시회가 대부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는 것만 봐도 위상과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테크기업들은 전시회에 부스를 꾸려 고객과 만난다. 수요 없는 공급이 있을 리 없다.

진 매니저는 "'탑 10' 유니콘 중 7곳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협업을 원하는 기업들이 몰리게 되고 VC들도 마찬가지"라며 "계속 이렇게 순환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작년 8월 발간한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연구소는 팬데믹 기간 주요 도시의 고용 동향을 분석해 실리콘밸리에 집중된 테크산업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지 여부를 살펴봤다.

결과는 명확했다. 원격근무 확산 등으로 특정 지리적 공간을 고집할 필요성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리콘밸리를 떠날 유인이 생기진 않았다. 오랫동안 형성돼 온 유무형의 네트워크가 여전히 끈끈하고 경쟁우위가 명확해 후발주자들에 결코 자리를 내주지 않을 거라는 게 결론이다.

김 차장은 "실리콘밸리에선 사람들이 만나면 어디서 얼마를 투자 받았는지 이야기하는 게 일상"이라며 "말이 나면 제주에 보내듯 내 기술로 사업하려면 여기에 와서 경쟁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HP 가라지(Garage) 전경
사진설명: 스탠퍼드 동기인 휴렛, 패커드가 HP를 창업한 곳. 실리콘밸리 발원지로 불린다.[출처: 연합인포맥스]

 


그렇다고 해서 실리콘밸리가 변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당연히 시대의 흐름을 탄다. 최신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유입되는 기업의 업종이 달라지는 게 대표적이다.

코트라 IT지원센터에 입주 희망 의사를 밝힌 기업을 기준으로 올해는 특히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반도체, ESG, 클린 테크 관련 기업이 많았다. 어느 하나 빠짐없이 최근 가장 '핫'한 분야들이다.

진 매니저는 "작년 말 챗GPT가 화제를 모으며 AI 붐이 일기 시작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하드웨어 기업이 많았다면 요즘은 SW 기반 회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sj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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