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3년 5개월간의 재판 과정에서 보여 온 것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재판 시작 20분 전인 오후 1시40분께 법원에 도착했다. 진한 회색의 정장을 입고 붉은색과 검은색, 흰색이 섞인 체크무늬 넥타이를 맸다. 지난 106차례의 공판 동안 여러 차례 착용했던 것이다.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도 똑같았다.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법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과 비가 뒤섞여 내렸지만, 우산을 쓰진 않았다.

법정 향하는 이재용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정 안에서의 모습도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다. 재판부가 출석을 확인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다. 이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재판부의 판결 이유 설명을 들었다. 늘 그래왔듯 이날도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최대한 정자세를 유지했다.

피고인이 14명에 달한 만큼 이날 선고 공판은 장시간 진행이 예상됐다. 재판부가 초반에 "판결 이유 설명이 길어질 것 같다. 피고인들은 앉아 있다 주문을 낭독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50여분 만에 주문 낭독이 이뤄졌다. 순식간이었다. "주문. 피고인 모두 무죄."

그토록 듣고 싶었을 '무죄' 선고였지만 이 회장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재판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퇴청한 뒤에도 잠시 자리를 지켰다. 검찰 측의 항소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듯 보였다. 일부 피고인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재판 중간중간 무죄 선고 기미가 보였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대해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라거나 "유죄 인정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

이 회장이 승계 목적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했는지에 대해서도 "지배력 강화와 삼성 승계만이 합병 목적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고, "합병이 지배력 강화 수단이라고 해도 목적이 부당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죄 선고 후 법원 나서는 이재용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죄를 선고받은 이 회장은 오후 3시께 법원 밖으로 나왔다. 약 1시간20분 전 법원에 들어갈 때와 상황이 180도 달라졌지만 행동엔 차이가 없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걸어 나와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탔다.

이날 겉으로 드러난 이 회장의 모습은 재판이 진행된 지난 3년 5개월 동안 보여온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그동안과 완벽히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됐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최후진술에서 "삼성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며 "부디 저의 모든 역량을 (삼성이)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총수의 사법리스크라는 최대 부담을 일단 덜어낸 삼성그룹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재계 안팎의 시선이 이 회장에게 쏠리고 있다. (기업금융부 유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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