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작년 역대 최대실적을 기록한 국내 금융지주와 상장 은행들이 배당 확대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은행들은 많이 벌어들인 만큼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방침이지만, 금융당국이 고배당 자제를 요청하고 나서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다음 달 2일 하나금융지주를 시작으로 주요 금융지주사·은행들이 잇따라 작년 실적을 발표한다. 업계에선 이들이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대 순익을 거뒀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인포맥스 기업정보 컨센서스 종합(화면번호 8031)에 따르면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각각 3조 원대, 하나금융과 우리은행[000030]도 각각 2조 원 안팎의 순이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을 내면서 배당도 확대할 것으로 예상한다.

증권사들은 KB금융의 올해 배당금액은 지난해 4천980억 원보다 두 배 가까운 8천300억 원, 신한금융도 작년 6천876억 원에서 올해 2천억 원 이상 늘릴 것이라는 추정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작년보다 1천억 원 이상 늘어난 3천600억 원대, 지난 한 해 주가가 60% 이상 오른 하나금융도 3천108억 원에서 올해 4천500억 원 이상의 통 큰 배당을 실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각 금융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해마다 배당성향을 늘려왔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작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당성향을 꾸준하게 25%로 높여갈 방침이며 중장기적으로는 30%로 맞추겠다"고 약속했으며, 조용병 회장도 작년 취임 직후 대규모 배당을 하며 수익성 강화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배당 시즌을 앞두고 고배당 자제 요청을 하고 나서면서 배당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지난 11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배당정책은 각 은행의 경영상 자율 결정사항으로 존중돼야 하지만 향후 바젤의 자본규제 강화에 대비해 내부 유도 확대를 통해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유 있을 때 내부유보를 늘리고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라는 취지의 발언이었지만 은행들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등을 통한 이자 장사로 배를 불렸다는 비판이 나오자 금융당국이 고배당에 선제로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됐다.

금융위도 지난 21일 금융권 자본규제 개편방안을 통해 은행들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60% 이상인 고위험 대출에 대한 자본 적립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배당, 자사주 매입 등을 제한하도록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많은 수익을 낸 건 충당금을 덜 쌓은 영향 등이 크다"며 "고배당 자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바젤Ⅲ, IFRS9 도입 등에 대비해 자본 확충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만큼 (배당 결정에) 반영해 줄 거라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배당성향을 보고 필요하다면 적정성 여부 등을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외국계 은행은 과도한 배당으로 국부유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만큼 배당 결정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가계대출 규제 강화 등을 이유로 올해 배당을 줄이고 충당금을 더 쌓는 방향으로 영국 본사와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배당을 하지 않은 씨티은행처럼 내년에 중간배당을 유보할지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SC제일은행은 영국 본사가 100% 지분을 보유해 배당금 전액 본사로 지급된다. 2016년에는 순익 중 800억 원을 본사로 보냈다. 매년 거액의 배당금을 해외 주주들에게 송금하면서 매년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2016년에는 금감원으로부터 배당금 관련 의사 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라며 경영 유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당에 대한 경영진들의 입장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당국의 권고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순익이 늘어난 만큼 배당을 대폭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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