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신한은행의 필리핀 현지 은행인 이스트웨스트은행(Eastwestbank) 지분 인수 협상이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양측간 매매 조건을 두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협상이 사실상 결렬 단계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이스트웨스트은행 지분 20% 인수 협상은 작년 말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트웨스트은행은 필리핀 부동산 재벌 필인베스트그룹(FDC)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지 13위권의 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8월 본입찰에 단독 참여했다. 시장에 알려진 매각 가격은 3천억 원 안팎으로 매각 지분 20% 중 신한은행이 15%를, 신한카드가 5%를 인수할 계획이었다.

당초 KB국민은행과 일본 아오조라은행이 예비입찰에 참여해 '필리핀 혈투'로까지 해석됐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본입찰에는 신한은행만 참여하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이스트웨스트은행은 본입찰 직전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위성호 신한은행장과 비공개 회동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당시 다른 인수 후보 측과의 접촉은 없었다.

하지만 본입찰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신한은행이 지분 20%를 인수하면 최대주주인 FDC에 이어 2대 주주가 되는데, 그에 상응하는 사외이사 선임과 경영 참여 등의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 이스트웨스트은행도 신한은행의 요구에 쉽사리 응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재무제표로 매각가를 산정하는 데도 양측의 이견은 컸다.

협상 과정에서 수차례 인수 조건이 변경되자 신한은행은 매각주간사인 골드만삭스에 항의하기로 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스트웨스트은행이 워낙 자존심이 세고 주간사 측도 만만치 않아 세부논의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다"며 "내부적으로 매물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만 일정 PBR 이상으로 베팅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에 진출한 국내 은행은 산업ㆍ신한ㆍ우리은행 등 3곳. 신한은행은 지난 2015년 11월 마닐라에 첫 지점을 열었다.

신한은행은 이스트웨스트은행 지분 인수를 통해 현지 영업점과의 연계를 통해 영업력을 확장하고, 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확산하는 계기로 삼을 예정이었다.

베트남을 비롯해 싱가포르ㆍ인도네시아ㆍ캄보디아ㆍ미얀마ㆍ인도 등 주요 아시아 금융시장을 잇는 '아시아 금융 벨트'를 구축한다는 의미에서도 필리핀 진출은 의미가 컸다.

하지만 경영 참여 자체가 막힌 지분을 큰 돈을 들여 인수해봤자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대두되고 있다.

조 회장 역시 "원칙에 따라 (가격에서) 무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내부에선 최근 신한카드가 지분 100%를 인수한 베트남 소비자금융회사 '푸르덴셜 베트남 파이낸스 컴퍼니 리미티드(PVFC)' 사례와 비교하는 지적도 있다.

PVFC의 본입찰 일정이 이스트웨스트은행보다 두 달 정도 늦었는데도 성과는 더 빨랐다.

또 다른 신한은행 관계자는 "인수 규모에서 차이가 나긴 했지만, 신한카드가 자본 투입이나 의사결정에 있어 속도가 빨랐다"며 "필리핀 인수전 결과가 불투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스트웨스트은행 지분 인수를 위한 논의가 완전히 종료되지 않은 만큼 신한은행 측은 좀 더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인수에 관여하고 있는 허영택 신한은행 글로벌사업그룹장은 "아직 진행 중인 딜이라 언급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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