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재인 정부를 다른 말로 일자리 정부라 하는 데 아이러니하게도 고용 사정은 최악이다. 아니 참사, 재난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내년 일자리 예산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당도 정부의 일자리 예산 확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다. 돈을 풀어서라도 일자리를 늘려보겠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인 셈이다.

재정의 당연한 역할이니 정부와 여당의 내년 일자리 예산 확대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임은 두말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서 신규 고용이 5천 명이라는 참담한 성적표가 나오자마자 공교롭게도 예산안과 연결됐다는 점이다. 뒷북을 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미 고용의 적신호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당시도 재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5개월 연속 고용 성적표는 신통치 않았다.

그렇다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이 잘 못 됐을 수 있다는 점을 한 번 되짚어 봐야 않나 싶다. 재정과 정책이 한 축으로 조화를 이뤄내면 고용의 개선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

고용 개선이 더딘 이유를 최저임금 이슈나 주 52시간 근무제로 연결 짓는 정치권과 경제계 안팎의 목소리도 있다.

최저임금은 올라야 하고 국민의 여가 생활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대(大)전제를 지켜내면서 고용도 늘릴 솔로몬의 지혜가 지금 정부에는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반대하는 쪽도 설득할 수 있다.

최저임금 문제나 주 52시간 정책 모두 국민에게 소득증대와 여가를 제공한다는 취지인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가 작금의 고용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면 국민을 위한 선의의 정책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없는 데 임금 문제가 어디 있고, 여가 생활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부는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정책이 고용 문제와 연결하기엔 시기상조라고만 하지 말고 실제로 연결고리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연결 고리를 명확히 알아야 문제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다.

또 정부는 일자리의 양만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정부의 재정 투입만으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긴 어렵다. 공공기관의 일자리 정도가 양질의 일자리일 텐데 그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 대기업과 강소 중견·중소기업들이 나서 줘야 한다. 그래야 근본적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땜질식 재정 투입만으론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기업들이 고용을 신나게 해야만 좋은 일자리가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도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여러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기업들도 정부가 규제를 푼 덕에 과실을 거두면 투자와 고용으로 화답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와 기업이 상호 신뢰가 없다 보니 정부는 기업 규제를 풀어 주면 안 될 거 같고, 기업도 불확실한 규제를 핑계로 투자나 고용보단 현금을 쌓아두기에만 급급하다. 결국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선결 과제는 재정 투입이 아닌 정부와 기업의 상호 신뢰 회복이다. (정책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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