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 증시가 위태롭다. 유례없는 경기 호황 속에 연일 연중 고점을 경신하며 거침없이 내달릴 것만 같았던 미 증시가 최근 깊은 수렁에 빠져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연내 마침표를 찍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까지 플러스 알파로 더해지며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데 있다.

게다가 최근 발표되는 주요 기업들의 실적도 시장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최근 불거진 유럽과 중동, 중국 등 지정학적 불안도 미 증시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문제는 국내 금융시장이다. 미국발 삭풍을 견디기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나 시장 체력은 너무나 허약한 게 사실이다. 소규모개방(스몰오픈이코노미) 경제의 한계이고 설움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증시는 물론이고 믿었던 채권시장에서마저 외국인 자금이 스멀스멀 빠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은 이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4조원어치 넘게 순매도했다. 이 추세라면 2015년 8월에 기록한 4조2천950억원 순매도 이후 월별 외국인 순매도로는 가장 큰 규모가 될 것 같다. 외국인 매도를 빌미로 우리 주식시장도 패닉 장세를 반복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코스피는 10월에만 12% 넘게 빠졌다.

채권시장도 심상치 않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가 벌어졌음에도 채권시장에서 순유입 기조를 유지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 9월 들어선 1조9천120억원의 채권자금을 뻬갔다. 외국인이 채권자금이 순유출로 돌아선 건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달에도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은 순유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이탈이 공포를 만들고, 그 공포는 시장에서 또 다른 공포를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이나 실물 경제의 '퍼펙트스톰'은 아직 찾아오지도 않았다. 외환시장이 비교적 잘 버텨 주고 있어서다. 코스피가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달러-원 환율은 1,120원대 후반과 1,130원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움직임이다.

우리 금융시장과 실물 경제의 위기는 주식이나 채권이 아닌 반드시 외환시장이 트리거(Triggers)가 됐다. 1997년도 그랬고, 2008년 당시 위기도 달러 (공급) 부족에서 찾아왔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알 수 있다.

최근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흐름만 놓고 보면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현재 금융시장이나 실물 경제가 위기라고 성급하게 진단하기엔 이르다.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빠져나가고, 국내 금융회사들이 달러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 이는 지금의 주식과 채권시장 혼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퍼펙트스톰이다. 그래서 외환시장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 당국자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가격변수 역시 환율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외환 당국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때문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다 보니 펀더멘털에 반하는 환율 움직임에도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지 못하고, 타이밍이 중요한 투기 세력에 대한 대응도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다. 시장 안정을 이뤄내야 실물 경제를 살릴 수 있고 국민 생활도 안정된다. 미·중 무역전쟁의 파편 조각으로 우리 국민이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당국자의 소신과 정책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할때다. (정책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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