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은행 억대 신용대출 사실상 '한도 관리'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정부가 폭증한 신용대출에 대한 사실상 핀셋 규제에 돌입했다. 생계형 대출보다는 주식투자에 활용된 고액의 신용대출을 관리하는 데 최우선 목표다.

은행들은 당국의 신용대출 경고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4분기부터 실적이 주춤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는 모양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부동산에 이어 주식투자까지 막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일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카카오뱅크 여신 담당 임원과 화상회의를 열고 신용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각 은행의 고액 신용대출 현황과 비대면·대환대출 추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금감원은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했다는 뜻의 신조어)·빚투(빚내서 투자한다는 신조어)' 현상이 최근 신용대출 폭증의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달 5대 주요 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잔액은 한 달 새 4조 넘게 늘며 사상 최대 증가세를 나타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별로는 조단위로 신용대출이 늘어난 곳도 있어 상황을 살펴본 것"이라며 "고소득, 고신용자 중심의 고액대출이 공통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의 투자 광풍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날 금감원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은행들은 자체적인 한도 관리에 돌입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1억원이 넘는 고액의 신용대출이 주요 관리 대상이다. 은행들은 조만간 금감원에 신용대출 관리 계획과 모니터링 강화 방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신용대출에 대한 핀셋 규제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8일 "최근 신용대출 증가세가 은행권의 대출실적 경쟁에서 기인했는지 살펴보겠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은 이례적인 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으로 업권 내 비대면 환경이 개선되며 은행 간 경쟁적인 상품 출시가 신용대출 폭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에서다.

사실상 대출의 한도관리를 요구하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은행은 다소 답답한 모양새다. 최근 신용대출 폭증은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한 주식시장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에서 기인한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은행이 견실한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늘어난 대출 수요 때문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악화할 우려가 적은 고액 신용대출을 줄인다면 은행의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카카오게임즈 청약 영향도 있지만, 담보대출이 막힌 투자자들의 수요나 신용대출도 규제할 것이란 전망에서 나온 사전 수요도 만만치 않다"며 "가뜩이나 코로나19를 이유로 당국이 은행에 요구하는 게 많은데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까지 속도 조절한다면 4분기 실적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미 신용대출 규제를 향한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에 이어 올해 기업공개(IPO) 대어로 손꼽히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장은 오는 10월이다.

그러나 당국의 규제에 일부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불만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 재테크 카페 이용자는 "국민의 자산 증식을 기원한다는 말은 허울뿐"이라며 "정부가 뉴딜펀드를 조성하면서 투자를 유도하고 있지만, 뉴딜펀드 자체가 카카오게임즈나 빅히트엔터테인먼트보다 수익률이 높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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