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제 제로금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저금리 추세는 지속했지만, 올해 각국 중앙은행이 급격한 경기 냉각을 막고자 유동성을 공급하고 일제히 기준금리를 급하게 낮춘 영향이 크다. 어쩌면 앞서 수십 년 전부터 제로금리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 우리도 드디어 예정된 길에 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조정해 죽은 경기를 살리고, 과열된 경기를 식혀왔다. 중앙은행을 싸움에 나서는 장수로 본다면 기준금리는 일종의 칼인 셈인데, 지금 이게 휘둘러도 소용없을 정도로 작아지고 짧아졌다. 인플레이션의 부활로 금리가 다시 오르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사실상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유럽에서 한번 낮아진 금리는 좀처럼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프 설명 : 일본(빨강)과 한국(파랑) 정책금리 추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의 역할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이다. 각국 정부의 재정정책이 경기 살리기를 주도하고 있으며, 중앙은행은 이를 위해 발행하는 국채 등을 사주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국내도 1차, 2차, 3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외에 그린 뉴딜 등의 정부 정책 중심으로 경기 살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4차 추경과 관련해 다행스럽게도 한국은행이 5조원의 국고채 매입을 발표했다며 국고채 발행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재정정책이 형식적으로라도 외부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적 결정을 내세우는 통화정책보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과정을 거쳐서 나온다는 점이다. 재정정책은 당정협의회를 거쳐서 수립된 후 최종적으로 의회를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가 얽힐 수 있다. 앞으로 재정 주도의 경기 부양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 이제 외부 입김을 막아낼 칼이 변변치 않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정치 영향에 휘둘리는 상황이 연출될 여지가 있다.



손성원 미국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구분이 거의 없다고 평가한다. 일본 정부는 2013년 무렵 강력한 재정정책을 기반으로 한 아베노믹스라는 경기 부양책을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막대한 국고채 매입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양상은 코로나19 이후 요즘 미국과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다. 그래서 고민해 본다. 막대하게 풀린 유동성이 종국에 인플레이션 급등을 가져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인플레 파이터로서 중앙은행은 제대로 자기 일을 할 수 있을까. (자본시장.자산운용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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