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대한항공이 산업은행의 주도로 아시아나항공과 합병하면서 사실상 '준국유화'함에 따라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입김이 더 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율을 5% 아래로 낮췄지만, 산은이 확보하게 되는 한진칼 지분까지 합치면 지분율은 15%에 육박한다. 한진칼 경영권을 둘러싼 현 경영진과 이른바 3자연합(조현아 전 부사장·KCGI·반도건설)간 분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정부는 막강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것이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분율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은 한진칼 경영에서 멀어지는 분위기이긴 하다.

한때 7%를 넘었던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율은 지난해 4월 4.11%까지 떨어지며 주식 대랑 보유공시 의무(5%룰)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배구조 개선 기대감으로 한진칼의 주가가 크게 오르자 국민연금 위탁운용사들이 지분 일부를 정리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지분율을 꾸준히 낮춰 지난 7월 무렵엔 2% 수준까지 내려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의 한진칼 경영개입 가능성이 여전히 제기되는 것은 지난 7월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연금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유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율 하향으로 투자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하는 안을 검토했으나 경영 참여를 유지함으로써 개입 가능성에 다시 불이 붙었다.

산은이 한진칼에 8천억원을 투입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합병을 주도하면서 이 같은 관측에 더욱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산은은 8천억원을 투입해 한진칼의 지분 10.6%를 확보할 예정이다. 5천억원은 한진칼이 단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투입하며 3천억원을 대한항공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교환사채(EB)를 인수하는 데 쓴다.

현재로선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율이 정확히 공개되지 않지만 경영 참여 목적을 유지한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향후 지분을 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 지분율 공시를 기준으로 해도 산은과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율은 도합 15%에 육박한다.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이 첨예한 상황에서 정부 지분 15%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산은을 대상으로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증이 끝나면 현 경영진인 조원태 회장 측의 지분율은 현재 41.1%에서 37.7%로 희석된다. 3자 연합의 지분율도 46.7%에서 41.7%로 줄어든다.

양측의 지분율 격차가 겨우 4%포인트에 불과한 상황에서 정부가 쥔 15%의 지분율은 결국 주요 주주를 '말 잘 듣게' 통제하는 수단이 될 공산이 크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산은은 장기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데 목적이 있는 국책은행"이라며 "산은의 한진칼 지분도 나중엔 결국 처분해야 하는데 시장에 풀기엔 부담스러운 만큼 국민연금이 일부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은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0.6%는 크지만, 그 자체만으로 경영 참여는 어렵기 때문에 외부 투자자가 지분을 인수하기엔 실익이 크지 않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한진칼과 함께 대한항공의 유상증자 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의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2조5천억원 규모로 유상증자를 시행한다. 한진칼에 배정된 몫은 7천317억원이며 나머지는 일반 주주를 대상으로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만큼 대한항공 지분 8.14%를 가진 국민연금도 이번 증자에 참여할 것이 유력하다.

문제는 실권이 발생했을 때다. 한진칼과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대한항공 소액주주 8만2천여명이 1조3천억원에 이르는 증자 물량을 받아내야 한다. 외국인 보유물량 12%를 제외해도 1인 평균 1천만원 이상의 자금이 요구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후 독점적 지위에 대한 기대감에 현재 주가는 강세지만 합병에 불만인 소액주주도 상당수다. 증자 참여 주주가 대거 미달하면 실권주는 결국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산은이나 국민연금이 소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지금이라도 당장 대한항공 지분을 늘릴 수 있지만 동시에 지분율 제한 내규도 있어 단순히 지분율이 늘어난다고 영향력이 더 커진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한진칼과 대한항공에서 두 정부 기관의 입김이 동시에 더 거세질 것이라는 게 부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한진칼에 8천억원을 투입하며 한진그룹에 7대 의무 조항을 내걸었다. 한진 일가의 기업 전횡이 발각되면 경영진을 교체하고 합의 내용을 위반할 경우 5천억원의 위약금을 물린다는 내용 등이 투자합의서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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