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포는 연준이나 각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점과 무관하지 않다.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계속 현상을 몇 걸음 뒤떨어져서 쫓는 데 급급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탓이다. 정책에 대한 불신은 투자자들의 자신감을 무너뜨려서 시장 변동성을 높이는 주범이다. 작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 헛발질이다. 올해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이 사태가 장기화한 여파를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현재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시장에 안정감을 충분히 주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과거의 세계화 시대가 끝났으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제 질서를 만들기 위한 머리부터 맞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지경에서 전 세계 경제 대국 1~2위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은 더 실망스럽다. 인플레이션 탓에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하는 존 바이든 미 대통령이 비축유 방출을 지시하고, 내달 중순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함에도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로 올랐다. 시장의 반응은 무시인 셈이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도 골칫거리다. 뒤늦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상하이 등이 봉쇄되면서 소비가 준데다 인플레를 유발한 공급망 붕괴도 더 고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G2에서 현 상황을 타개할 기폭제가 나온다면 상황이 쉽게 풀릴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G2가 세계의 소비시장과 공급망 사슬을 복원할 수 있는 여러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이제 팬데믹 이후 부풀려진 거품이 꺼질 정도의 자산 가격 급락이 진행됐다는 시장 일부의 판단도 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올해 들어 자산 가격이 급하게 내려갈 때마다 낙관 편향적인 심리에 기반한 저가 매수가 끊이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내년 성장이 쪼그라들 것이라는 R의 공포가 본격화하면 자산시장의 약세 기조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 국채 단기물 금리가 잠시 장기물을 웃돌았는데, 이는 전형적인 R의 신호로 읽힌다. 지금껏 봤던 공포영화의 마지막은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현 상황에서는 중국이 대대적인 부양책을 발표해 생산을 정상화하고, 미국도 관세 인하로 화답하는 게 그런 장면일 것이다. 6월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R의 공포를 깨울지 하루 뒤면 결과가 나온다. (투자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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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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