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역사에 영원한 제국은 없다. 찬란한 전성기를 누리며 흥하고 성하던 나라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쇠하고 망한다. 겉으로 드러난 멸망의 원인은 외적의 침입이지만 사실 출발은 내부 경제 시스템의 균열 때문인 경우가 많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라 경제를 몰락으로 끌고 간 두 개의 큰 줄기는 세금과 물가다.

세금의 무서움은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사자성어에 잘 드러난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다가 망했던 중국의 수(隋)와 당(唐) 그리고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의 기폭제가 된 고부군수 조병갑의 세금폭정 등 많은 사례가 있다.

세금은 국민감정을 폭발시키는 이슈이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렸다간 큰 화를 치른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에선 "거위 털 뽑듯이 세금 거둬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큰 역풍을 맞기도 했다.

세금보다 더 치명적인 이슈는 물가다.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 때문에 멸망한 나라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스파르타와 패권전쟁을 치르다 재정적자가 쌓이고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몰락의 길을 간 아테네가 대표적 예이다. 네로황제 시대부터 재정부족 문제가 불거진 로마제국도 결국 화폐를 찍어내다가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며 붕괴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도 통화팽창 정책을 잘못 썼다가 마르크화 가치 폭락을 맞으며 붕괴됐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도 온통 물가 공포에 빠져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38개 회원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9.2%다. 미국은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8.6%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들도 초인플레이션에 신음하고 있다. 경제구조가 취약한 신흥국들도 물가상승에 고통받는 건 마찬가지다. 터키와 카자흐스탄, 스리랑카는 물론 일부 중남미 지역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정권교체의 목소리와 각종 시위에 몸살을 앓는 등 국가적 대혼란을 겪고 있다.



1993년 이후 30년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전년비.붉은색)와 기준금리(푸른색)추이
출처:연합인포맥스 매크로차트(8888)






무엇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초조해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물가를 잡지 못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40%대의 지지율에 머물러 11월 중간선거 패배 위기에 휩싸여 있다. 다급한 바이든은 유가를 잡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계획하고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도 일부 폐지를 검토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만시지탄(晩時之歎)인 것 같다.

연방준비제도(Fed)는 15일(미국 현지시간)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75b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경제 성장에 일부 손상이 가더라도 물가만큼은 최우선으로 잡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이 언제 잡힐지, 과연 잡힐 수는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인플레는 일시적"이라고 했던 제롬 파월 의장의 작년 발언을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바이든과 파월 모두 한번 잃은 신뢰를 되찾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물가뿐만 아니라 고환율, 고유가의 태풍 속 한가운데 있다. 대통령과 경제사령탑의 입에서 '경제태풍', '경제위기' '경제전쟁'이라는 말이 날마다 등장한다. 한국은행의 '빅스텝' 금리인상론도 제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무엇보다 정책당국이 신뢰를 잃으면 안 된다. 실기(失期)해서도 안 된다. 인플레이션을 안일하게 보고 대응하다가 큰 곤욕을 치르는 미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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