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두 개 있다. 1950년에 터진 6·25전쟁과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다. 둘 다 국민들의 뇌리에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인들의 가치관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7년의 외환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달러 매물은 없이 매수호가만 잔뜩 쌓인 날이 허다했고 오전 9시 개장과 동시에 거래 없이 폐장하기 일쑤였다. 굴욕적인 조건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도 달러-원 환율은 진정되지 않았다. 급기야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23일 달러-원은 1,999원의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달러-원 2,000원 시대가 열리는가 싶던 때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달러-원 환율
연합인포맥스 달러-원 차트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 줄도산하고, 외국인들의 투자자금이 이탈하며 결국 외환보유액이 바닥났다는 뉴스는 시장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해주는 대가로 가혹한 조건을 요구한 IMF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직도 두려움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다. IMF 사태를 경제의 6ㆍ25에 빗대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우리 국민들은 달러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이 때 얻은 교훈때문인지 환율이 오르면 곧 위기가 온다는 것도 직감하게 됐다.







달러-원 환율이 최근 1,300원을 찍으며 금융위기에 대한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상 달러-원 환율이 1,300원을 넘었을 때 세계 경제에 문제가 생기고 곧바로 우리 경제에도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대표적이고, 2001년 발생했던 닷컴버블 붕괴와 9ㆍ11테러 사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미국발 금융위기 때 달러-원 환율은 모두 1,300원을 넘었다.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은 어느 하나의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복합적인 위기상태다. 훗날 우리는 이 위기를 초인플레이션의 위기라고 부를 수도 있고 전쟁과 탈세계화의 위기라고 부를 수도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위기라는 명칭도 가능할 것이다.



임창렬 부총리 1백억달러 조기지원 발표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25일 새벽 세종로청사 대회의실에서 IMF 및 G-7 국가 등 주요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연내 또는 내년1월초에 1백억달러를 조기지원할 것이고 발표하고 있다./하사헌 1997.12.25 (서울=聯合)<저작권자 ⓒ 200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위기를 상징하는 환율 1,300원이 이제 뉴노멀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달러가 들어오는 신호보다 나가는 신호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적자로 전환한 무역수지는 연말까지 147억달러 적자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외국인들은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하고 있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자산 투자는 그칠 줄 모르고 있다. 달러 유출이 유입보다 많은 형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금의 복합위기는 아직 시작점이라는 것이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미국의 물가상승과 금리 인상 행진이 언제쯤 마무리될지 예견하기 힘들다. 위기를 막으려면 부양책이 필요한데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다.

지금 드러난 악재가 해소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에서 1,300원을 넘어선 환율을 바라보는 경제주체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환율 안정 없이 국내경제의 안정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의 7차 핵실험까지 더해지면 고질적인 한반도의 컨트리 리스크까지 수면위에 오를 수 있다. 이래저래 환율을 자극할 요인은 많은데 뾰족한 대책은 없는 사면초가의 형국이 지속될 전망이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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