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사는 우리에게 지정학적 리스크는 어찌 보면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주변 강대국의 역학 관계는 나라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사이에서 우린 때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했고, 망국의 치욕을 겪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 속에 남북한이 갈리는 비극을 겪었고, 탈냉전의 시대에 소련이 몰락하는가 싶더니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 시대에 끼인 몸이 됐다.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 봐도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틈새 속에서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거쳐 우리나라를 방문해 동북아 지정학 이슈를 점화했다.

펠로시발(發) 지정학 리스크는 상당 기간 파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방문 동선을 그려보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대만과 한국, 일본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해양을 봉쇄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라인이다. 백악관을 비롯한 미국 정계는 펠로시의 방문에 일정 부분 선을 그었으나, 중국으로선 '하나의 중국' 원칙에서 한발도 물러설 수 없기에 초강경 대응을 했다. 펠로시 의장이 떠난 후 중국이 대만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무력 시위를 한 이유다.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과자 수입 금지 같은 경제보복도 병행했다.



[그래픽] 미국 펠로시 하원의장 아시아 순방 일정(종합)






대만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우리에게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다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과 인접한 우리의 특성상 양안의 긴장이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에 돈을 넣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핵심 관심사는 대한민국의 컨트리 리스크다. 미·중 간의 대결국면이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면 대만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대해 보는 시각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북한이 이 국면을 활용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전략을 들고나올 것인지, 미·중 간의 갈등 과정에서 북한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7차 핵실험은 과연 언제 할 것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양안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95~96년 당시엔 세계화(Globalization)가 완성되기 전이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사실상 미미했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했듯이 양안의 긴장은 중국, 대만 증시는 물론 미국, 우리나라까지 전 세계 시장을 흔들 수 있고,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에도 강한 파장을 줄 수 있다.

우리 기업들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다. 대만 주변에서 중국의 군사훈련과 미사일 발사가 반복되면 항공이나 물류 등에 피해가 올 수 있다. TSMC 등 대만 반도체 기업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반도체 업황에도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번 양안 위기는 선거 등 정치 일정이 얽혀있다는 점에서 1995년 양안 위기와 비슷하다. 95년 당시는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연임 선거를 앞두고 긴장이 고조된 측면이 있다면 이번에는 미국의 11월 중간선거와 10월 시진핑 중국 주석의 3 연임을 앞둔 정치 일정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반도체, 2차전지, 전기차 등 미래의 경제 먹거리를 위한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있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적어도 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는 동북아의 지정학 리스크가 금융시장에 주기적인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와 경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러한 리스크에 제대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취재본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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