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제유가의 하락세가 가파르다.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13일 68.61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6월 27일 이후 최저수준으로 5개월 만에 70달러선 밑으로 내려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대한 공포로 90달러선까지 근접했던 석유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다.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감산 의지를 계속 공언하고 있으나 다른 산유국들이 감산에 동참할지 불투명해지면서 유가의 하락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최근 진행된 유가 하락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경기가 하강하면 제조업 가동률과 운송률이 떨어지고 그 원료가 되는 석유 수요도 둔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종료 이후 나타난 급격한 고금리 체제에서 세계 경제가 그나마 잘 버텨왔으나, 이제 임계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경제는 물가와 소비 등 여러 지표에서 경기하강 신호가 발견된다. 최근 큰 폭으로 증가한 휘발유 재고는 단적인 예다. 고용시장은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며 고금리에도 꺾이지 않던 강력함을 잃어가고 있다. 아직 골디락스(경기호황도 아닌 침체도 아닌 완만한 성장세)에 대한 희망이 있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약한 경기침체 정도는 나타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미국만 봤을 때 아직까지 리세션(경기침체)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지만,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사정이 다르다는 게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미국 경제의 기세가 꺾이면 그나마 버텨내기를 하던 나머지 나라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구매력이 감소하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뚜렷한 경기하강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세계의 공장' 중국의 성장 전망이 좋지 않은 것은 내년 세계 경제에 부담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올해 내내 부동산 불안과 부채 문제,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경제성장률 부진을 겪었다. 글로벌 경제가 인플레이션 대응에 고생할 때 중국은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등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5일 중국의 경제우려를 반영해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곪아있던 상처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어 세계 경제에 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WTI 1월물(붉은 선)와 LME 구리 시세(파란선)
연합인포맥스 차트(화면번호 5000)

 


향후 리세션 위협과 관련해 유심히 지켜봐야 할 변수가 있다. '탄광속의 카나리아'로 불리는 구리값의 변화다. 가전제품부터 전기차까지 주요 제조업의 재료로 쓰이는 구리의 수요가 둔화할 경우 리세션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리 가격은 중국의 경기와도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구리의 최대 수입국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값은 올해 초 t당 9천500달러를 찍은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일시적인 반등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는 파나마와 페루 등 구리광산의 파업 등 돌발변수 때문이다. 유가와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세계 경제의 둔화를 암시하고 있다. 유독가스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탄광 속으로 미리 보냈던 카나리아처럼 말이다.(편집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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