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밸류업이 화두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마련한 야심찬 대책이다.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환원을 유도해 투자환경을 개선하려는 것인데 시장의 반응은 일단 고무적이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를 높이는 기업들의 대응을 기대하며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외국인들의 한국 증시 매수가 이어지고, 일부 외국계 증권사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을 따 유니셔티브라고 부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2월 26일 실제 대책이 공개된 후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주주환원 조건에 못 미친 상장사에 퇴출'을 시사하자 꺼질 뻔한 밸류업 기대감이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그래픽] 주요국 상장기업 수익·자산가치 지표 현황

 


주주가치를 높여 증시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미국 등 선진국 증시는 쭉쭉 뻗어나가는데 우리 증시는 몇 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이니 투자자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주가가 올라야 투자자들이 행복하고, 4월에 있을 총선 민심에도 조금이나마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시장을 통한 국민 자산 형성 지원이라는 거창한 문구가 아니더라도, 대주주의 횡포와 소액주주를 홀대하고 심지어 피해를 입히는 우리 증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데 대해선 주식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밸류업의 포커스가 저PBR(주가순자산비율) 테마,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주가 띄우기에만 매몰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쟁력의 확보다. 세계 무대에서 통할 경쟁력을 갖춰야 치열한 생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요즘같이 AI 혁명이 세계 경제를 휩쓸고, 반도체 업계의 재편이 진행되는 과정에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글로벌 경쟁력이다.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아 돈을 벌어들이면 개선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주주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게 밸류업의 기본이다. 고질적 내수 부진에 점점 사업 먹거리가 사라지는 우리 경제 구조에선 해외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끝장이다. AI 혁명에서 치고 나가는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과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비하면 아직 우리 기업들의 대응은 미진하다. 마이크론테크놀러지는 최근 HBM 반도체 대량 생산을 예고했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 대형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대만의 TSMC를 끌어들여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이웃 나라 일본을 보면 긴장감을 떨칠 수 없다. 우리도 뒤늦게나마 AI 등 첨단분에서 글로벌 빅테크들과 손을 잡으며 뒤따라가고 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래픽] 삼성전자 실적 추이

 


닛케이225지수가 4만선을 돌파하는 등 일본 주식시장이 밸류업 덕분에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증시가 오른 것이 과연 밸류업 때문만일까. 일본에 유리하게 형성된 거시경제, 정치, 외교 환경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를 바탕으로 탄탄한 실적을 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과정에서 중국에서 빠진 글로벌 자금은 일본으로 향하고 있고, 기업실적이 부진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다. 그 발길을 우리나라로 돌리려면 기업들의 체질 개선과 환골탈태, 과감한 변신이 선결돼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엔 1등 문화가 있었다. 1980~90년대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은 재계 1위를 놓고 치열하게 싸웠다. '아무도 2등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구호가 이때 유행했다. 이런 DNA가 쌓이고 쌓여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AI 혁명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지금 필요한 시대정신이 바로 과거 우리 기업들을 일깨웠던 1등 정신이다. (편집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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