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융지주사 체제 전환을 준비하는 교보생명에 지난 일 년은 숨 가빴다.

보험업계에서 '깐깐'하기로 손꼽히는 교보생명은 새 도전을 앞두고 도입된 IFRS17에 맞춰 누구보다 원칙에 근거한 공정하고 투명한 성장을 하려는 데 집중했다.

박진호 교보생명 지속경영지원실장은 21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위 '고무줄 회계' 논란이 있었던 업계 내 분위기에서 교보생명만큼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며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아닌 우리의 과거와 현실, 미래를 원칙주의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고 현실적으로 내다보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IFRS17 관련 회계처리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을 때 교보생명의 보험계약마진(CSM)은 오히려 조(兆) 단위로 늘어나기도 했다. 생보업계 내 논쟁거리가 됐던 해약환급금 준비금 적립에서도 자유로웠다.

박 실장은 "리스크는 선제로 두텁게, 번 돈은 딱 번 것만큼만 적은 것뿐"이라며 "보수적이란 표현보다도 그저 정확하게 회계처리를 하려고 했다는 표현이 적확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보험업계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보수적인 가정의 적용'이란 말과 맞닿아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보수적이라는 정도는 시점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중립'이 모든 원칙의 적용 기준으로 쓰였다는 얘기다.

이처럼 박 실장이 회계처리의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는 보험업계에서 처음으로 북미 시장에서 인정해주는 국제 연금 계리사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 조지아주립대 대학원에서 계리학을 공부했다. 1989년부터 2005년까지는 미국에서 경력을 쌓았다. 미국 스탠리앤컴퍼니에서 연금계리부문을 도맡았던 그가 왓슨와이어트, 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 등을 거치며 인사와 전략 등 기업 경영의 전반을 숫자로 살피다가 신창재 이사회 의장의 러브콜을 받았다.

교보생명 입사 이래 14년간은 '연금 계리사'의 전문성을 살려 퇴직연금 사업본부를 이끌었다. 이후 2020년부터 CFO 역할을 맡아 재무실장, 지속경영지원실장을 지냈다. 교보생명의 주주 간 분쟁과 본격적인 기업공개(IPO) 준비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신 의장의 '믿을맨'인 그가 항상 옆에 있었다.

박 실장은 선후배들에게 거침없는 추진력, 스스럼없는 소통 방식으로 유명하다.

다소 무거울법한 연초 경영전략 회의에서 직원들은 매년 박 실장이 등장하면 핸드폰을 꺼낸다. 올해 MZ세대들에게 유행한 '나루토 춤'을 추는가 하면, 작년에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을 직접 패러디하기도 했다.

논쟁에 있어서는 지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에게 "쇼 미더 머니"를 외친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어내는 추진력은 후배들이 가장 먼저 치켜세우는 그의 강점이다.

그런 그가 이야기하는 지난해 가장 큰 성과는 업계의 경쟁 논리에서 벗어서 안정적인 이익 기반을 마련한 점이다.

박 실장은 "고객 중심의 마케팅 전략을 강화해 온라인 보험을 포함한 혁신적인 상품의 신규 고객을 늘렸다"며 "단기납 종신보험 상품의 경쟁에서도 의도적으로 벗어나 고객의 보장 자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해 보장성 보험 가입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지난해 건강보장 중심의 보장성 보험 가입 확대를 통해 월평균 53억 원 대비 13억 원 증가한 실적을 달성했다. 덕분에 신계약 CSM은 직전년도 대비 1천100억 원 늘어난 1조3천72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CSM은 일 년 새 6천억 원 늘어나며 6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이보다 1조 원가량 늘어난 7조1천억 원을 목표로 설정했다.

안정적인 CSM 성장은 교보생명의 이익 체력도 크게 늘렸다.

지난해 별도 기준 교보생명의 당기순이익은 4천891억 원으로 직전 연도보다 23.8% 늘었다. 특히 제조업의 영업이익에 해당하는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은 6천451억 원으로 44.2%나 급증했다.

물론 원칙주의를 내세웠지만 IFRS17은 교보생명에도 쉽지 않은 제도적 변화였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3분기까지 6천억 원 넘는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4분기 결산에서 일회성 비용을 반영하면서 실적이 다소 줄었다. IFRS17 원칙에 따른 선제 비용 처리로 생긴 일회성 요인 탓이다. 특히 연금보험 생존율 확대에 따른 연금지급금액이 3천억 원 가까이 늘었고, 보험계약대출 가산금리 인하로 인해 400억 원 수준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를 제외할 경우 연간 이익 체력은 8천억 원대에 육박한다.

박 실장은 "신규 회계 기준 도입으로 인한 당기 이익의 변동과 가용 자본의 급격한 변화가 업계에 혼선을 줬다"며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는 IFRS17 도입 후 재무 상태나 손익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국내에선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를 통해 가치 관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올해는 예실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예상치를 회사에 유리하게 설정하는 것이 아닌, 안정적이고 최선의 가정을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보생명은 올해도 '두 마리 토끼'를 잡기로 했다. 향후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한 양적 성장은 물론 질적 성장도 포기할 수 없어서다.

박 실장은 "올해는 고금리 채권과 국내 직접대출 중심으로 신규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며 "당장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당기손익의 변동성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규모와 시기에 접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업계 내 경쟁이 격화하는 제3 보험시장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조직을 늘리려고 한다"며 "재보험사와의 협력을 통한 신규 급부를 개발해서 고객, 시장 경쟁력을 갖춘 건강보험 라인업을 차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밑 작업이 될 주주 친화 정책도 이어간다.

박 실장은 "주주 친화 정책의 최우선은 재무 건전성이다"며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킥스(K-ICS) 경과조치를 신청해 둔 상태인 만큼 당분간은 재무 건전성 제고를 위한 정책을 선제로 추진하고 이후에 지속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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