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 기업부채 시장 위험 신호 나와…바퀴벌레론까지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지난 수년간 급격히 팽창한 미국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에서 잇단 기업 파산을 계기로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시장의 불투명성과 완화된 신용 기준 등이 '뇌관'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조와 유사하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13일 국제금융센터(KCIF)가 발간한 '미국 사모대출 시장의 위험 신호'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미국 경제의 둔화 조짐 속에서 사모대출 시장의 잠재 위험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 9월 미국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업체 트라이컬러 홀딩스(Tricolor Holdings)와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 브랜즈(First Brands)의 연쇄 파산이 저신용 기업부채 시장의 위험 신호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들 업체의 복잡한 부채구조와 사기 의혹 등이 드러나자 시장에서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신용 사이클 후반부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어딘가에 더 있다는 뜻"이라고 비유하며 이번 파산이 시장 전반의 광범위한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 역시 "사모대출 시장의 위험한 관행을 드러낸 경종"이라며 "2008년 금융위기 이전과 유사한 조짐"이라고 지적했다.
사모대출은 은행 등 전통적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산운용사 등이 조성한 펀드가 기업에 직접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자, 규제가 덜한 사모대출이 중소·중견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로 부상하며 급성장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현재 약 2조 달러(2천939조원)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 10년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이미 미국 저신용 크레딧 시장에서 하이일드 채권이나 레버리지론 규모를 넘어섰다.
문제는 시장의 급격한 성장 이면에 잠재적 위험 요인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비공개 대출 중심의 불투명성이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개별 대출 조건, 담보 구조, 차입자 재무 정보 등 실질적 위험 노출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고 평가 역시 대부분 운용사의 자체 모델에 의존해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의 부실 정보는 공개시장보다 훨씬 불투명해 문제가 생겨도 겉으로 드러나는 신호가 늦다"고 평가했다.
고금리 상황에서 이자 지급을 유예하는 'PIK'(Payment-In-Kind) 대출이 증가하는 것도 위험 신호다.
PIK는 당장의 현금흐름 부담을 덜기 위해 이자를 원금에 합산하는 방식으로 사모대출 중 PIK 옵션이 포함된 비중은 2022년 6∼7% 수준에서 2025년 약 11%까지 확대됐다.
이는 단기적으로 기업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키워 디폴트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일부 투자자들이 규제 충족을 위해 소형·전문 신용평가사에 의존하면서 '신용등급 고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콜름 켈러허 UBS 회장은 미국 보험사들이 사모대출 자산의 높은 신용등급을 얻기 위해 '평가 쇼핑'을 하고 있다며 이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고평가 관행에 비유했다.
은행들이 직접 대출 대신 사모대출 운용사에 대한 대출을 늘리면서 간접적인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증가한 점도 잠재적 연결고리로 지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비은행금융기관에 약 4조5천억 달러의 익스포저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연결고리 강화에 대한 우려와 규제·감독 필요성을 제기했다.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미국 사모대출 시장의 디폴트율은 9월 기준 8.4%로, 2022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업계에서는 반론도 제기된다. 마크 로완 아폴로 최고경영자(CEO) 등은 최근 파산 사태가 전통적 은행 대출과 관련된 '나쁜 행위자'(bad actors)에 의한 개별 사건일 뿐, 사모대출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금융센터는 보고서에서 "사모대출 시장의 불안 신호가 시스템 리스크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시장 규모 대비 낮은 투명성과 규제 공백, 중소기업 중심 구조 등을 감안하면 향후 경기 둔화 시 부실 위험이 커질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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