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이종웅 차장·부유신 과장·백창인 조사역 집필)'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 성장이 추세적으로 둔화한 원인으로 '퇴출돼야 할 기업이 퇴출되지 않은 것'을 지목했다.
저자들은 시장에서 도태된 한계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퇴출당하는 '정화 메커니즘'이 정상 작동했다면 투자와 국내총생산(GDP)이 실제보다 더 증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분석에 따르면 2022~2024년 퇴출 고위험기업은 전체 표본의 3.8%였지만 실제 퇴출된 기업은 0.4%에 불과했다. 이들은 한계기업이 역동적인 신생기업으로 대체됐다면 투자는 2.8%, GDP는 0.4%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가 '좀비 기업'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다. 특정 산업을 거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글을 읽어 내려가며 떠오르는 회사가 한 곳 있었다. 홈플러스다.
홈플러스에 딱 어울리는 말이 '대마불사(大馬不死)'다. 청산가치(약 3조7천억원)가 계속기업가치(약 2조5천억원)보다 무려 1조원 넘게 큰 만큼 파산선고를 받아도 이상한 것이 없지만, 살아 있다.
직접 고용 인원이 2만명에 달하고 간접 고용까지 합치면 10만명의 생계가 얽힌 회사니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점이 전국에 분포해 정치적 폭발력도 상당하다.
홈플러스 인수 의향을 공식적으로 밝힌 투자자는 중소기업 두 곳(하렉스인포텍·스노마드)이다. 이들 기업 중 어디든 홈플러스를 인수해 제대로 경영할 것이라고 진지하게 전망하는 사람은 없다.
홈플러스는 지난 회계연도(2024년 3월~2025년 2월)에 6천75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고 해도 매년 7천억원 가까이 자기자본이 줄어든다는 소리다. 그러나 오프라인 유통업은 앞으로 영업 환경이 악화할 가능성이 큰 산업이다.
정치권이 소망 또는 압박하는 대로 농협이 나서 홈플러스를 인수한다고 해도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농협이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지는 않다. 하나로마트보다 덩치가 큰 홈플러스를 괜히 업었다가 폭삭 주저앉을까 걱정이다.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홈플러스는 경제 전체 생산성 개선의 발목을 잡게 된다. 홈플러스가 점유한 막대한 점포 부지와 인력, 자본이 더 생산적인 곳에 재배치되지 못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일자리 차원에서도 성장 산업에 자본이 재배치되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앞서 소개한 BOK 이슈노트에서 저자들은 "금융지원을 하더라도 기업의 원활한 시장 진입과 퇴출을 통해 경제의 혁신성과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의 운명이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사례가 하나둘 쌓여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서서히 끌어내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산업부 김학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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