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국내 주요 그룹의 인사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삼성그룹은 가장 실적이 좋은 삼성전자의 임원을 대거 계열사에 배치하며 성공 DNA를 그룹 전반에 심는 데 주력했고 LG그룹은 성과에 따른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다만, 인사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게 3일 재계의 평가다.

연말 인사발표를 앞둔 현대기아차그룹은 폭을 크게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고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연말 철강 계열사 합병 이슈도 걸려 있다.

SK그룹의 경우 예상이 엇갈린다.

총수 부재 속에 조직 안정을 위해 최소한의 인사만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하성민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의 역할이 커지는 등 예상외로 인사 폭이 클 수도 있다는 전망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삼성과 LG, 같은 듯 다른 인사 = 부진한 계열사나 사업부문 수장 교체는 삼성과 LG그룹에 동일하게 이뤄졌다. 실적이 좋은 임원에는 발탁 인사로 답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압도적인 실적을 보이는 삼성전자 임원을 대거 계열사에 승진 발령냈고, LG그룹은 내부 승진과 함께 외부 인사까지 영입하며 신상필벌 원칙을 확고하게 드러냈다.

삼성그룹은 지난 2일 정기인사에서 조남성ㆍ이선종ㆍ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을 각각 제일모직과 삼성벤처투자,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 발령냈다. 또, 전동수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이 삼성SDS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따라 삼성 계열사 대표이사 31명 중 삼성전자 출신이 17명을 차지하게 됐다.

삼성전자 출신의 전진 배치는 정기인사 전부터 감지됐다.

최근 삼성전자의 정진동 중남미총괄 경영혁신팀장(전무) 등 '혁신전문가' 10여 명이 실적 부진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영선진화 태스크포스(TF)'로 이동했고, 한우성 삼성전자 미국오스틴법인장(전무) 등 3명의 임원도 삼성전기 주력사업 개선을 위한 TF에 합류하기도 했다.

LG그룹은 '시장 선도' 기준에 미달한 CEO를 과감히 교체하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보인 CEO는 승진시켰다.

특히 LG전자에서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장 교체가 시선을 끌었다. 권희원 사장이 물러나고 지난 2년간 ㈜LG 시너지팀을 이끌어온 하현회 부사장이 사장으로 올라서며 그 자리를 차지했다.

HE사업본부가 역성장하는 글로벌 TV시장에도 나름대로 선방했으나 3D TV 위주의 마케팅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반면, LG전자는 스마트폰 품질 경쟁력을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박종석 MC사업본부장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실적 부진에 빠진 LG상사는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하영봉 사장은 고문으로 물러난다.

또, 그룹의 캐시카우로 부상한 LG화학에서 최고경영자(CEO) 겸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인 박진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올렸다. 지난해 말 LG화학 CEO를 맡아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사업을 잘 육성했다는 평가에 따른 결과다.

이웅범 LG이노텍 대표이사 부사장이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사업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국내는 물론 그룹 내부에서도 삼성전자가 독주하는 것을 고려해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에 삼성전자 임원을 전진배치했고 LG그룹은 당장 실적이 부진해도 시장 선도 기준에 따라 성과 보상 및 질책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현대차 '긴장감'…SK '조직 안정이냐, 변화냐'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26일 신형 제네시스를 직접 소개하며 세계적인 명차와 당당히 경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대차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는 진단이 많다.

지난달 현대차 판매량은 40만8천533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 감소했다. 국내 판매량은 11.9% 감소했고 해외 판매량도 1.3% 줄었다. 전년동기대비 해외 판매량 감소는 2009년 5월 이후 처음이다.

기아차 판매량도 전년동기대비 0.3% 줄었다. 해외 판매량은 2.2% 늘었으나 국내 판매량이 무려 12.3%나 감소했다.

안팎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룹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는 10월24일 경영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내년에도 미국 출구 전략 시행에 따른 신흥국 금융불안, 유로존 정책 혼선 등 불확실성이 클 것으로 보여 시장 예측이 쉽지 않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대대적인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현대차 안팎의 시각이다. 게다가 연말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 합병까지 고려하면 인사수요는 더 많다. 특히 정 회장의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의 이동 및 승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SK그룹의 경우 변수가 많다.

계열 구조조정이 활발한 SK그룹이 총수 공백을 고려해 조직 안정화에 역점을 둔다면 인사 폭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상대적으로 고령이어서 일선 후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하성민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전면에 나설 수 있다. 김 의장이 그대로 있는다고 해도 하 사장이 정유·석유화학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문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렇게 되면 계열사 주요 임원의 연쇄적인 자리 이동도 가능하다.

또,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의 실적 부진도 인사 수요 요인으로 꼽힌다. SK증권과 SK네트웍스, SK해운, SK건설은 이미 구조조정에 나섰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위기의식을 가진 현대차는 대대적인 인사에 조직의 긴장감을 불어넣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고 SK그룹은 조직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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